김수천(57·사법연수원 17기)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정운호(51·구속 기소)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억대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 2일 구속되자 법원에선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라는 반응이 흘러나왔다. 김 부장판사의 이름은 ‘정운호 법조비리’가 불거진 지난 4월부터 등장했었다. 이에 대법원이 소명을 요구했지만 김 부장판사는 의혹을 부인하며 정확한 금융거래 자료 등을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금품수수액 5배까지 징계부가금
따라서 6일 법원장회의에서는 진술에만 의존하지 않는 신속한 사실관계 확인 필요성이 대두됐다. 법관이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선별적으로 제출할 때 대처할 수단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법원장들은 법관이 연루된 금품수수와 성범죄 등 사건이 발생하면 징계청구권자에게 자료요구 권한을 부여하고, 불응 시 추가 징계가 가능토록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비위 법관에게 공무원연금 감액, 징계부가금 부과 등의 금전적 조치를 취한다는 내용도 눈길을 끌었다. 공무원연금법상 공무원은 금품 및 향응 수수, 공금의 횡령·유용으로 해임된 경우 퇴직급여와 퇴직수당이 절반 감액되지만 법관에 대해서는 더욱 엄밀히 적용한다는 것이었다. 이날 회의에서는 법관들의 경우 일정 기간 이상의 ‘정직’ 징계만 받아도 연금을 감액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징계부가금은 금품 및 향응 수수액, 공금 횡령·유용액의 5배까지 부과키로 했다. 이는 몰수·추징, 과태료 등의 일반적 처분과 별도로 부과되는 것이다. 법원장들은 법관징계법에 이 규정을 신설토록 제안하기로 뜻을 모았다.
도돌이표 대책…실효성 얻으려면
비위 법관을 재판 업무에서 배제하고 부정한 재산 증식 사실이 드러나면 연임에서 제외한다는 내용 등도 논의됐다. 하지만 과거 발표된 법조비리·내부청렴 대책과의 큰 차별성 및 실효성은 미지수라는 평가도 나왔다. 감사 인력 확대, 윤리교육 강화 등의 대책은 실상 과거에도 자주 언급된 것이었다.
잇단 비위 행위로 홍역을 치른 검찰에 이어 대법원도 재발 방지책을 내놓았지만 법조계에서는 “대책이 없어 문제가 발생했던 게 아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홍수 게이트’ 때문에 벌어진 이용훈 전 대법원장의 2006년 8월 대국민 사과는 ‘법관 및 법원공무원에 대한 행동강령’이 다듬어진 지 고작 3개월 뒤 이뤄졌다. 법관이 직무 관련자로부터 음식, 골프 등의 접대를 받으면 징계 대상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뒤였지만 현직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이 금품 로비를 받는 사건이 충격을 줬다.
1997년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 여파로 법관윤리강령이 대대적으로 개정됐지만 1999년 ‘대전 법조비리’ 사건이 이어지면서 무색해진 역사도 있다. 당시 대법원은 법관이 변호사와 일체의 경제적 거래를 하지 못하게 명시했고, 증여나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경우에 대해서도 세부 규정을 마련했었다.
지난해에는 사건 청탁 대가로 사채업자로부터 억대 뒷돈을 받은 현직 판사가 구속됐다. 법원행정처의 부장판사가 성매매를 저지르는 사건도 발생했다. 되풀이되는 법관 비위를 막기 위해서는 법조 브로커 근절 노력과 함께 확실한 처벌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변협은 “법관이 사건 당사자 등과 접촉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접촉 시 이유 불문하고 그 자체만으로 징계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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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의혹 법관 자료 요구 불응 땐 추가 징계
입력 2016-09-07 01:07 수정 2016-09-07 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