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정·곡성… 할리우드 직배사, 한국영화 제작 팔걷었다

입력 2016-09-07 17:46

우리끼리 만든 영화를 우리 극장에만 걸던 시대는 갔다. 한국영화 제작에 뛰어든 할리우드 직배사들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추석 극장가 최고 기대작 ‘밀정’을 내놓은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와 지난 5월 ‘곡성’으로 흥행 대박을 터뜨린 이십세기폭스 코리아가 대표적이다.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2013), 봉준호 감독의 ‘옥자’(내년 개봉) 등도 해외 제작사와 협업했지만 이들은 북미 시장을 노린 할리우드 영화에 가깝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밀정’과 ‘곡성’은 소재부터 지극히 한국적인 로컬 영화다. 해외 직배사로서는 적잖은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투자 지원을 감행한 셈이다.

이 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한국영화 시장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깔려있다.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 철저한 사전조사를 거쳐 성공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감독 입장에서는 러브콜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해외 직배사의 막대한 자본과 풍부한 경험을 등에 업는 동시에 해외 판로 확보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곡성’ 판권은 전 세계 97개국에 팔려나갔고, ‘밀정’ 해외 판매는 현재 활발히 진행 중이다.

해외 직배사와 한국 제작사의 작업 스타일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일 처리 방식을 비교해봤을 때 각각의 장단점이 보인다는 게 현장을 경험한 감독들의 말이다.

워너가 공동제작·배급한 ‘밀정’을 연출한 김지운 감독은 “해외 직배사의 경우 합리성을 기초로 한 효율성이 있고, 한국은 ‘우리 일’이라고 생각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느낌이 있다”며 “두 장점이 결합된 형태가 한국에서 외국 스튜디오 영화를 만드는 이런 사례인 것 같다”고 말했다.

‘곡성’의 나홍진 감독도 과거 인터뷰에서 “저마다 좋은 부분과 안 좋은 부분이 존재한다”면서 “영화를 만드는 관례가 다르다 보니까 생기는 문제들이 있다. (해외 직배사와 일 해보니) 제작 환경이 자유로운 반면 빨리빨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더라”고 설명했다.

할리우드 자본 유입은 점차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밀정’으로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른 워너는 올해 개봉 예정인 이주영 감독의 ‘싱글라이더’에 이어 내년 박훈정 감독의 ‘VIP’, 이정범 감독의 ‘악질경찰’를 차례로 선보인다.

2010년 한국 지사를 설립한 폭스는 ‘런닝맨’(2013) ‘슬로우 비디오’(2014) ‘나의 절친 악당들’(2015) 등 색깔 있는 작품들을 꾸준히 제작해왔다. 그간의 흥행 성적은 저조했으나 ‘곡성’으로 대반전을 이뤄냈다. 차기작 ‘대립군’ 촬영도 이미 시작됐다. 이정재·여진구·김무열을 캐스팅해 5일 크랭크인했다.

‘곡성’ 개봉 전 한국을 찾았던 토마스 제게이어스 폭스 인터내셔널 프로덕션 대표는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로컬 제작을 더 성장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는 “현재 연간 한 편 정도에 불과한 한국영화 제작 편수를 2∼3편으로 늘릴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