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아들 혼자 둘 수 없어 트럭 태워 일하러 다니다… 마지막 길마저 함께 떠난 父子

입력 2016-09-07 04:09
8세 지적장애 2급 아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 자신이 몰던 1t 트럭에 태우고 일을 나가던 아버지가 25t 탑차를 추돌해 모두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6일 새벽 부산 사상구 낙동대로에서 25t 탑차를 추돌해 심하게 부서진 1t 트럭. 부산경찰청 제공
아버지 임모(47)씨는 9년 전 어렵게 결혼했다. 38세의 늦은 나이에 베트남 국적의 아내를 맞아 달콤한 신혼살림을 꾸렸다. 이듬해 외아들도 낳았다. 안타깝게도 지적장애 2급(뇌병변)이었지만 그래도 부러울 것이 없었다. 영세민 아파트에 살 정도로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지만 가족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3년 전 아내가 돌연 집을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

시련이 커지면 커질수록 ‘부성(父性)’은 강해졌다. 아버지는 아들이 남들처럼 정상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에, 어머니가 곁에 없는 것에 늘 미안했다. 그래서 입버릇처럼 ‘아들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되뇌었다. 정시 출퇴근하는 일반 직장은 아들이 아프거나 할 경우 갑자기 시간을 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건설현장 일용직 일을 택했다.

하루하루 어렵게 생활하던 아버지는 혼자서 키우기 힘들어 누나(52)에게 아들을 3년 동안 맡겼다. 그러나 올해 초 아들이 여덟 살이 되자 특수학교에 보내기 위해 아들을 다시 데려왔다. 혼자 아들을 돌보면서 생계도 꾸려야 했던 아버지는 아들을 맡길 데가 없어 전전긍긍했다. 이 때문에 아들이 학교수업을 마치면 1t 트럭에 태우고 다니며 공사판을 전전했다. 이 트럭은 한 달 전 지병으로 사망한 형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고된 노동 중에도 틈틈이 아들이 잘 있는지 살피고, 말동무가 되어주며 지극하게 보살폈다. 최근에는 경기침체와 궂은 날씨 등으로 하루 5만∼10만원하는 건설현장의 일거리조차 없어 너무 힘들었다.

‘비극의 그날’도 트럭에 아들을 태우고 새벽길을 나섰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다.

6일 새벽 1시49분쯤이었다. 부산 삼락동 낙동대로 한 모텔 앞 도로에서 4차로에 정차해 있던 25t 탑차를 미처 보지 못하고 뒷부분을 들이받은 것이다. 이 충격으로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 그토록 사랑하던 아들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소식을 듣고 현장에 달려온 유족은 “하늘도 무심하지.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 정말 힘들게 살았는데 불쌍해서 어떻게 하느냐”며 오열했다.

팍팍한 삶을 살아가다 장애 외아들과 비극적 삶을 마감한 아버지. 평소 장애인이 학교 문 앞을 나오는 순간 ‘나 몰라라’ 하는 우리 사회의 무심함을 한탄했을지도 모른다. 장애인을 함께 책임져야 하지만 실제로는 부모가 거의 모두 떠맡고 있는 우리 현실을 아버지는 온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아버지의 고독’이 결국 비극으로 막을 내린 것이다.

부산=윤봉학 기자 bhyoon@kmib.co.kr, 삽화=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