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deep] 되풀이되는 비리 대체 왜… 뿌리박힌 건설사 담합 솜방망이 처벌로는 못끊어내

입력 2016-09-07 04:02



지난해 8월 19일 서울 강남구 건설회관에선 ‘건설업계 자정결의대회’가 열렸다. 여기에 참가한 현대건설 정수현 사장 등 국내 72개 건설사 대표와 임직원의 표정은 비장했다. 이들은 “불공정하고 부조리한 과거와 완전히 단절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0년대 이후 무려 4번째 ‘자정결의’였다.

건설업 종사자들이 외친 부조리한 관행은 ‘담합’이다. 국내 대형 건설사들은 이명박정부 당시 4대강, 경인아라뱃길, 호남고속철도 등 초대형 토목사업에서 줄줄이 담합했다가 적발돼 공공공사 입찰 참가자격 제한 등의 행정 제재를 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8월 광복 70주년 특별사면으로 제재에서 풀려났다. 이후 건설사들은 담합 사실이 적발되면 해당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책임을 지고 사퇴키로 했다. 동시에 총 2000억원 규모의 건설공익재단을 설립해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기로 합의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담합은 계속 적발되고 있다. 사회공헌기금도 당초 결의한 2000억원 중 겨우 47억1000만원 모금에 그쳤다. 이 가운데 실제로 노숙인 주거 개선 등 사업에 쓰이는 금액은 3억5000만원에 불과하다. 해외수주 급감과 건설경기 침체 등 악재 속에 ‘살려면 어쩔 수 없다’며 불공정한 관행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6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최근까지 공정위가 적발한 시공능력평가 상위 10개사의 ‘부당 공동행위’는 총 102건으로, 부과한 과징금은 1조1223억원에 달했다.

시공능력 평가 1위인 삼성물산이 과징금 액수도 가장 많았다. 삼성물산은 2014년 이후 현재까지 입찰 담합, 생산·출고 제한 등 11건의 위법행위가 적발돼 239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2위인 현대건설도 같은 기간 15건의 담합행위가 적발돼 2308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이어 대림산업(1581억원) 대우건설(1362억원) SK건설(937억원) 순으로 과징금이 높았다.

최근 3년 이내 2014년이 정점이었다. 현대건설·대우건설·SK건설 등 28개사에 3479억원이 부과된 호남고속철도 13개 공구 사업 담합사건을 포함해 총 6330억원의 과징금 처분이 이어졌다. 지난해 1830억원으로 크게 줄었던 과징금은 올해 지난달 기준으로 이미 지난해 총액을 훌쩍 뛰어넘은 3062억원을 기록 중이다.

끊이지 않는 건설 담합은 수천억원대 공사 담합이 적발돼도 과징금은 계약금 수준에 불과한 데다 몇 차례 조정 작업을 거치면서 과징금이 절반 이하로 낮아지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법적 규제도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은 3년간 과징금을 3회 부과받은 건설사의 등록을 말소하도록 규정하지만 그런 사례는 거의 없다. 공공사업 입찰참가 제한 조치도 대상 건설사가 소송을 내 사면을 받을 때까지 시간을 끄는 방식으로 피해갈 수 있다. 실제로 현대건설은 부산지하철 1호선 연장공사 입찰 당시 대우건설과 담합해 과징금 48억3000만원을 부과받은 게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가 지난달 31일 패소하기도 했다.

다만 건설사들은 제도적 요인이 담합을 부추긴다고 항변한다. 가장 낮은 가격에 공사를 주는 ‘최저가낙찰제’와 1개 공구(工區) 이상 공사를 하지 못하는 ‘1사 1공구제’가 담합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논란 끝에 최저가낙찰제는 올해부터 폐지됐지만 사정은 비슷하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설계비 등의 큰 비용을 감당하면서 입찰에 참여해 여러 공사를 따내도 결국 한 공구만 선택해야 하는데 누가 출혈경쟁을 하려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글=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