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의 달맞이, 눈에는 달빛이, 마음에는 전통이 살포시…

입력 2016-09-07 19:14
경북 안동시 풍천면 부용대에서 내려다 본 하회마을. 낙동강 물줄기가 마을을 휘감아 돌아가는 모습이 포근하다. 마을 안에는 풍산 류씨의 종택인 양진당과 서애 류성룡의 종택인 충효당이 자리잡고 있다.
안동시 상아동과 성곡동을 잇는 월영교에 보름달이 두둥실 떠올라 있다. 달빛이 월영교의 야간조명 및 호수 주변 가로등 불빛과 어우러져 황홀한 풍광을 펼쳐보이고 있다.
병산서원
한가위에는 두둥실 보름달과 전통문화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쟁반같이 둥근 달을 보며 전통을 체험하고 송편을 곁들이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은’ 명절이 된다. 낭만이 스며 있는 달맞이 명소와 전통 체험이 가능한 추석 나들이 명소로 꼽히는 곳이 있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로 알려진 경북 안동이다.

초가을 밤의 낭만을 물들이는 관광 코스로 안동의 명물 월영교(月映橋)가 있다. 안동댐 보조호수를 가로질러 2003년 완공된 월영교는 상아동과 성곡동을 잇는 인도교로 길이 387m, 너비 3.6m다. 준공 당시 한국에서 가장 긴 나무다리로 기록됐다. 다리 가운데에는 월영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월영교에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전한다. 1998년 고성 이씨 문중 이응태의 묘를 이장하던 중 관에서 ‘원이 엄마의 편지’가 나왔다. ‘당신은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가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셨지요…내 꿈에 와서 모습 보여 주시고 자세히 말해주세요.’ 1586년 남편이 병으로 숨지자 절절한 사부곡을 담은 글을 관 속에 넣었는데 400년이 훨씬 지나 발견됐다.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미투리 한 켤레와 복중 아기의 배냇저고리도 있었다. 그 사랑을 기려 월영교의 모양도 미투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월영교는 화려한 분수 쇼를 펼쳐놓는다. 밤에는 야간조명이 어우러지며 다리를 중심으로 안동호반 일대가 빛으로 반짝인다. 특히 다리 건너 안동댐까지 이어지는 나들이길 가로등 불빛과 조명을 받은 객사의 풍경은 느낌이 색다르다. 밤의 월영교를 사진에 담고 싶다면 상아동 쪽 안동물문화관 전망대를 추천한다. 성곡동은 석빙고 앞이 좋다. 사람이 많이 오가지 않아 월영교의 야경을 조용히 감상하기에 으뜸이다.

낮에 찾아간다면 안동호반나들이길을 걸어보자. 월영교에서 법흥교까지 2080m에 이르는 길은 2013년 11월 준공됐다. 낙동강변으로 바싹 붙은 데크길은 강 위를 걷는 기분이 들 정도로 물과 가깝다. 총 8개의 전망대와 2개의 정자가 있어 쉼터와 포토존이 되고 있다. 법흥교 건너편에는 국보 16호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7층 전탑이 우뚝 서 있다.

풍천면 하회(河回)리에 있는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가 600년 넘게 대대로 살아온 대표적인 씨족마을이다. 조선시대 대유학자인 겸암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1999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2005년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방문해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생활공간이라는 점이 인정돼 2010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하늘에서 하회마을을 내려다보면 물줄기가 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있다. 하회는 낙동강 물줄기가 마을을 휘감아 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S’자형을 이뤄 태극형 또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으로 ‘물이 빙 돌아나간다’는 뜻의 ‘물도리동’으로도 불린다.

조선시대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하회마을에는 동서 방향으로 큰 길이 있다. 이 길을 경계로 위쪽을 북촌, 아래쪽을 남촌으로 나눈다. 북촌에는 풍산 류씨의 종택인 양진당(보물 제306호)이, 남촌에는 서애의 종택인 충효당(보물 제414호)이 중요한 건축물로 꼽힌다. 고샅길을 걷다보면 감나무가 자라는 담, 솟을대문 안쪽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 초가집 뒤란의 풋풋한 채소밭 등 마을의 속내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하회마을을 한눈에 감상하려면 부용대(芙蓉臺)에 올라야 한다. 부용대는 하회마을의 서북쪽 강 건너 광덕리 소나무숲 옆 높이 64m 절벽이다. 이곳에서 하회마을을 바라보면 낙동강 물이 하회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장관이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부용대 아래로 옥연정사(玉淵精舍), 겸암정사, 화천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옥연정사는 서애가 임진왜란 회고록인 ‘징비록’을 집필한 곳이다.

병산(屛山)서원은 하회마을에서 한 고개 떨어져 있다. 고려 때부터 내려오던 풍산 류씨 문중의 교육기관인 풍악서당을 서애가 1572년에 옮겨 지은 것이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탔으나 정경세 등 후학들이 다시 지었다. 병산서원이라는 편액을 받은 것은 철종 14년인 1863년이다. 1868년 대원군이 서원 철폐를 단행했을 때도 존속된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서원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걸어가면 솟을대문이 나타난다. 복례문(復禮門)이다. 복례문의 이름은 극기복례(克己復禮)에서 따왔다. 세속적인 몸을 극복하고 예를 다시 갖추라는 뜻이다. 엄숙함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복례문을 들어서면 정면 7칸으로 길게 선 만대루(晩對褸) 아래를 지나게 된다. 병산서원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 200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크기. 천장에는 휘어짐을 최대한 살린 굵은 통나무 대들보가 물결치듯 걸쳐 있다. 벽이 없고 기둥, 지붕, 마루만으로 이뤄져 사방이 트여 있다. 외부 경관이 모두 만대루 안으로 들어온다.

만대루 아래로 난 급경사 계단을 따라 고개를 숙이고 지나면 강당인 입교당과 만난다. 입교(立敎),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는 뜻이다. 입교당은 팔작지붕 홑처마에 장식없이 단출하다. 입교당 마루에 앉는 순간 병산서원의 모습은 바뀐다. 앞으로는 만대루의 시원하게 펼쳐진 지붕 위로 병풍을 닮은 병산이 솟아 있다. 누각 기둥 사이로는 낙동강 푸른 물이 찰랑거린다.

뒤쪽에는 입교당 문 사이로 그림 세 폭이 들어앉아 있다. 수령 200∼300년의 배롱나무가 붉은 꽃을 머리에 이고 부끄러운 듯 몸을 배배 비틀고 서 있다. 별다른 조경시설이 없어도 주변 풍광 모두를 정원으로 넉넉히 감싸안고 있다.

여행메모

병산서원 가는 길은 비포장 4.2㎞

헛제삿밥·찜닭… ‘안동의 별미’



중앙고속도로 서안동나들목에서 빠져 나와 예천 방면 34번 국도를 타고가다 보면 오른쪽에 하회마을 이정표가 보인다. 916번 지방도 풍천 방향으로 5㎞쯤 달리면 하회마을로 가는 진입로가 있다. 효부리에서 우회전하면 하회마을. 직진해서 비포장길로 4.2㎞쯤 가면 병산서원(사진)이다. 병산서원 앞에 널찍한 주차장이 있지만 주말이나 연휴에는 진입로가 좁아 차가 밀릴 수도 있다. 병산서원 곁 민박집에서 묵을 수 있다.

대중교통으로는 청량리역에서 안동역으로 가는 무궁화호가 하루 7회 운행한다. 약 3시간 20분 소요된다.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버스로는 약 2시간 50분 걸린다.

월영교 인근에서는 안동의 별미인 헛제삿밥, 안동찜닭 등도 맛볼 수 있다. 헛제삿밥은 주로 수많은 나물을 흰 밥 위에 놓아 구성하고 흔히 쓰이는 고추장 대신 간장과 함께 대접하는 비빔밥으로 한국의 전통 요리이다. 불에 구운 고기와 전 몇 개도 함께 준비한다. 안동댐 입구의 ‘까치구멍집’(054-821-1056)과 ‘안동 민속음식의 집’(054-821-2944)의 헛제삿밥이 유명하다. 재래식 간장과 깨소금, 참기름 외에는 파, 마늘, 고추 등의 자극적인 양념을 넣지 않아 구수하고 담백하다.

안동=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