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해의 차가운 물살을 힘차게 가르며 러시아로 순항 중인 슈틸리케호의 동력은 한 달 전 브라질 앞바다를 회항해 선체로 합류한 신태용호의 핵심 엔진들이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남자축구 8강 진출을 달성한 신태용(46) 축구대표팀 수석코치(올림픽대표팀 감독 겸직)와 공격수 황희찬(20·잘츠부르크) 미드필더 권창훈(22·수원 삼성)은 이제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진출을 목표로 탑승한 슈틸리케호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항해를 가속하고 있다.
신 코치는 슈틸리케호의 일등항해사다. 선장인 울리 슈틸리케(62·독일) 감독이 항로를 그리면 신 코치는 키를 잡아 배를 움직이고 선원들을 지휘한다. 슈틸리케 감독이 전력을 분석하고 전술을 구상할 때 가장 많이 상의하는 사람은 단연 신 코치다. 대표팀 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조언을 건네는 사람 역시 신 코치다. 겉으로 많이 드러나진 않지만 슈틸리케호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브레인’이다.
선수경력만 20년이다. 1986년 12월 청소년(U-16) 축구대표팀에서 선수로 데뷔해 2005년 6월 호주 프로축구 퀸즐랜드 로어에서 은퇴했다. 해외파 경력은 3개월로 짧았다. 하지만 프로축구 K리그에서는 13시즌 동안 활약했다. 그만큼 그라운드 경험이 풍부하다. 패스와 드리블 타이밍을 정확하게 포착했고, 공수조율 능력이 좋았다. 지능적이면서 감각적인 선수였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꾀돌이’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신 코치의 이런 경험과 지혜를 인정해 훈련장에서 선수를 직접 지휘할 수 있도록 휘슬을 과감하게 맡긴다. 지난해 1월 호주아시안컵 준우승과 8월 동아시안컵 우승을 합작하고, 올해 8월 리우올림픽에서 손흥민(24·토트넘 홋스퍼) 석현준(25·트라브존스포르) 장현수(25·광저우 푸리) 등 와일드카드와 23세 이하 선수들을 단독으로 지휘해 아시아 출전국 최고 성적인 8강 진출(2승1무1패)을 이룬 신 코치의 성과는 슈틸리케 감독의 믿음을 더 돈독하게 만들었다.
신 코치가 슈틸리케호의 두뇌라면 황희찬과 권창훈은 척추와 같은 존재다. 슈틸리케호와 신태용호를 모두 경험한 23세 이하 선수는 황희찬과 권창훈뿐이다.
황희찬은 신 코치가 발굴한 최고의 보석이다. 지난 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중국을 3대 2로 이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1차전에서 구자철 대신 막판 15분을 뛰고 A매치에 데뷔했다.
대표팀의 막내답지 않게 소리 없이 강하다. 무분별한 슛보다 공간을 확보한 동료를 발견하는 넓은 시야와 최전방에서 적진을 흔들어 2선 침투력을 높이는 풍부한 활동량을 가졌다. 큰 키와 위치선점을 활용한 타깃맨보다 속도와 발기술로 수비진을 붕괴하는 돌격형 스트라이커에 가깝다.
필요한 순간엔 과감한 슛으로 직접 마무리한다. 독일과의 리우올림픽 조별리그 2차전에선 선제골을 넣어 한국에 주도권을 안긴 주인공도 황희찬이다. 3대 3으로 비겨 8강 진출의 발판을 만들었던 경기다. 최순호(53) 황선홍(48) 최용수(43) 안정환(40) 이동국(37·전북) 박주영(31·서울)의 계보를 이을 한국의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부족함이 없다.
권창훈은 슈틸리케 감독과 신 코치의 합작품이다.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부터 슈틸리케호에 승선했다. 2선에서 공격을 지원하는 ‘야전사령관’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파괴력도 가진 공격형 미드필더다. 태극마크를 처음으로 달았던 지난해 9월 라오스와의 월드컵 2차 예선 홈경기에서는 멀티골을 터뜨렸다. 피지를 8대 0으로 격파했던 리우올림픽 조별리그 1차전에서 불과 1분 사이에 2골을 넣는 집중력도 보여줬다. 그렇게 리우올림픽에서 4경기를 모두 소화해 3골을 넣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권창훈·황희찬 申의 아이들, 러시아로 ‘러시’
입력 2016-09-07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