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롤타워 늑장 가동해놓고… 정부 ‘과거 실책’ 반복

입력 2016-09-06 04:17
한진해운 관련 고용지원 방안 긴급 당정 간담회가 열린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과 새누리당 하태경 환경노동위 간사, 김무성 전 대표 등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뉴시스
한진그룹은 5일 산업은행을 부랴부랴 찾아갔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확산되고 있는 글로벌 물류대란의 책임이 한진그룹에 있다고 정부가 지목한 직후였다. 채권단은 “의미 없는 말만 했을 뿐”이라며 냉랭한 분위기다. 뒤늦게 가동한 범정부 컨트롤타워, 확산되는 물류대란에 골든타임이 지나고 있는데, 책임질 당사자들은 여전히 혼선을 빚고 있다.

정부 “정보를 안 줘서…”

한진해운 사태와 관련된 주요 정부 부처와 금융 당국은 5일 일제히 한진해운에 책임을 전가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한진해운이 충분한 정보 제공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도 “한진해운의 법정관리행 전에는 정보를 알기 어려웠다”며 “정부가 한진해운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은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해양수산부 윤학배 차관은 독일 함부르크, 아시아의 싱가포르 등 지역별 거점항만을 선정해 하역에 협조를 구할 것이라고 정부 대책을 설명하면서도 “자금은 해당 선사가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그는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선사가 책임지는 게 원칙이고, 정부는 제한적으로 지원만 하는 것”이라고 책임론을 반박했다. 또 “한진그룹 대주주가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지원도 요구했다.

한진그룹은 이날 오후 산업은행을 찾아갔다. 회의는 저녁까지 이어졌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추가 지원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 찾아갔다”며 “6일에도 계속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공개적으로 책임을 추궁당하자 고개를 숙인 모양새다.

채권단과 금융 당국은 그러나 “한진이 구체적인 액수도 내놓지 않았고, 하역료도 낼 수 없다고 한다”며 채권단이 나서기엔 아직도 미흡하다는 판단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한진은 용선료와 채권 협상 때부터 겉으로만 잘되고 있다고 얘기해 왔지만 실제적인 진전은 없었다”며 “말만 해서는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채권단과 한진그룹 사이에 낀 한진해운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딱히 할 말이 없다”면서도 “법정관리로 가게 되기까지 채권단과 4개월간 자율협약을 해왔는데 왜 정보를 안 줬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속을 태웠다.

골든타임 또 놓치나

앞서 정부는 한진해운 사태 관련 범정부 합동대책 태스크포스(TF)가 출범하기 전까지 최소 여섯 차례의 공식 회의를 가졌다. 회의만 거듭하는 동안 바다에서 길을 잃는 한진해운의 선박은 늘어갔다. 지난달 30일 13척 수준이었던 한진해운의 비정상 운항 선박은 5일 79척으로 급증했다. 이 중 컨테이너선 47척은 공해상에 대기하는 상황이다. 컨테이너 34만5000개도 함께 억류됐다.

수출업체의 피해도 커지고 있다. 부산 식품 수출업체 A사는 “한진해운 선박으로 미국 롱비치항에 제품을 하역했는데, 관련 업무가 올스톱되면서 화물이 억류돼 창고에서 물건을 꺼내지 못하고 있다”며 “대체 선박 투입도 어려워 클레임이 걱정된다”고 호소했다.

봉제기계를 수출하는 C사는 베트남 봉제공장으로 수출될 기계를 싣고 가던 한진해운 화물선이 싱가포르항에서 억류되면서 납기에 차질을 빚고 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지역 중소수출 기업들은 대기업과 달리 대체 선박을 구하기도 어려워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일본 도쿄 지방재판소는 한진해운 회생절차를 승인하고 강제집행 금지명령을 내렸다고 서울중앙지법이 전했다. 한진해운 선박이 일본에서는 강제집행을 당할 위험 없이 운항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과거 세월호, 메르스 사태 등 주요 재난 때도 정부의 컨트롤타워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부처별로 칸막이를 치면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노출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물류대란은 돌발적으로 발생한 재난도 아니고 수개월 전부터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막상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돌입하고 사태가 커지자 탁상공론만 벌이며 우왕좌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원칙 없는 구조조정을 했다가 비판을 받으면 아무것도 안 해 버리는 행태의 반복”이라며 “정부 구조조정이 전문성 없이 여론에 휘둘렸다는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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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유성열 기자, 부산=윤봉학 기자, 강창욱·나성원 기자,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