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개헌 소견을 밝히자 상당수 의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장 비박(비박근혜)계는 친박(친박근혜) 당대표가 직접 본회의 석상에서 개헌을 얘기했으니 ‘금기어 규제’가 풀린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내놨다. 그러나 친박계는 ‘원론적인 얘기일 뿐’이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아 주류와 비주류 간 온도차가 드러났다. 이 대표가 보수정권의 호남 홀대를 사과하며 “(호남에) 유력한 대선주자가 없다”고 한 발언을 놓고도 뒷말이 무성했다.
비주류 중진 의원은 5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직후 국민일보와 만나 “당대표가 직접 (개헌을) 얘기한 만큼 허투루 흘릴 말이 아니다”며 “그동안 여권에서 개헌은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50%까지 열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른 재선 의원도 “개헌이 그동안 금기어였다면 이제는 금기가 해제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 대표가 ‘정치헌법·거래헌법·한시헌법은 안 된다’고 했는데 그 가이드라인에 맞춰 개헌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은 마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개헌=블랙홀’이라는 논리로 부정적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 대표가 대통령의 뜻을 모를 리 없는 만큼 청와대와의 사전 교감설도 흘러나왔다.
그러나 청와대는 전혀 몰랐다는 반응이다. 이 대표는 오전 7시40분쯤 연설문 원본을 기자단에 보낼 때 청와대에도 메일로 전달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개헌 내용이 담길지 전혀 몰랐다. 대통령이 순방 중인 상황에서 왜 이런 발언이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파장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청와대는 2014년 10월 김무성 전 대표가 중국 상하이에서 이른바 ‘개헌 봇물’ 발언을 했을 때 즉각 불쾌감을 표현했었다.
친박계는 의미 축소에 나섰다. 원유철 의원은 “당대표로서 할 수 있는 얘기를 한 것일 뿐 당장 개헌하자는 말은 아니다. 전체 연설에서 (개헌은) 작은 부분”이라고 했다. 다른 중진 의원도 “개헌에 신중하자는 데 방점이 찍힌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 발언이 ‘조건부 개헌론’을 언급한 것으로, 개헌을 추진한다면 각계 합의를 전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 대표는 “학계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정치권의 합의에 의해 추진 방법과 일정을 투명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날 “호남과 새누리당이 얼마든지 연대정치·연합정치를 펼칠 수 있다. 새누리당 대표로서 호남과 화해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 대목에서 “호남이 당장 유력한 대선 주자가 없다고 변방 정치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다”며 “호남도 주류 정치의 일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호남 정치세력과의 연대를 모색하기 위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호남 출신인 그가 ‘호남 출신 유력 대선주자 부재’를 언급한 것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왔다.
이 대표는 이날 김대중정부 시절 국정에 적극 협조하지 않은 점,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탄핵했던 점을 직접 언급하며 사과했다.
당내에서는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연설이었다”(서청원 의원) “여야 양쪽에서 다 박수를 받았으면 나름대로 잘한 것”(홍문표 의원) 등의 긍정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한 중진 의원은 “‘개헌’과 ‘호남 출신 대선주자 부재론’을 왜 언급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사진=이동희 기자
개헌, 대통령 뜻 모를 리 없는데… 靑 “교감 안 했다”?
입력 2016-09-06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