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승원 “고산자의 희생… 요즘 그런 사람 없잖아” [인터뷰]

입력 2016-09-06 18:50 수정 2016-09-07 10:44
7일 개봉한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에서 주인공 김정호 역을 맡은 차승원. 그는 “역사적인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관객들은 영화 자체로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병주 기자

“고산자(古山子) 김정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나요?” “대동여지도를 만든 사람, 딱 그 정도요. 관련 기록이 이렇게 없는 줄 몰랐어요. 정확히 언제 죽었는지도 모른대요. 너무 미스터리하지 않아요?”

배우 차승원(46)이 김정호를 마주한 첫 느낌은 아리송함이었다.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 출연을 망설인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캐릭터 설정부터 대사 톤을 잡는 것까지 그의 몫이었다. 마라도에서 백두산에 이르는 10만6240㎞의 국토 대장정은 덤이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차승원에게 ‘고생이 많았겠다’는 말을 건네자 그는 두 손을 내저었다. “엄청나게 고생스러워 보이는 영화잖아요? 근데 화면에 나오는 것만큼 심각하진 않았어요(웃음). 그만큼 배우의 감정을 소비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찍었다는 얘기죠.”

차승원이 연기한 김정호는 지도를 만드는 일 외에는 빈틈이 많고 인간적이다. 한 가지에 미쳐있으니 나머지 부분에는 허술한 면이 많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이런 설정을 바탕으로 말투는 자연스럽게 나왔다. 현대어가 일부 섞인 흔치 않은 사극 톤이 완성됐다.

초중반까지 이어지는 코미디를 소화하는 데에는 고민이 많았다. 단순히 웃기기 위한 영화가 아니기에 적절한 선을 지켜야 했다. 몇 부분은 다소 오버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가 출연 중인 예능프로그램명 ‘삼시세끼’가 대사에 등장하고, 내비게이션을 연상시키는 유머를 치는 장면이다.

“거기서 호불호가 갈리더라고요. 저도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약간 갸우뚱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뭐 없는 말은 아닌 것 같고(웃음). ‘굳이 거기서 왜?’ 의아해하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해요. 많이 떨리네요.”

앞서 기자간담회 때 차승원은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본인 연기 인생의 포인트가 될 작품이라고 언급했다. 어떤 의미였느냐고 물으니 그는 “강우석 감독과 1년 동안 촬영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그저 후루룩 지나가는 과정이 아니었다. ‘연기의 한 획을 그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영화들과 달랐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제작자 강우석과는 워낙 인연이 깊다. ‘신라의 달밤’ ‘광복절특사’ ‘선생 김봉두’ ‘혈의 누’ 등 흥행작을 함께했다. 감독 강우석과의 호흡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15년간 몰랐던 지점을 새로이 알게 됐다.

“제 머릿속 제작자 강우석은 어렵고 불편한 존재였어요. 마치 철옹성 같은, 무소불위의 권력이었죠. 감독 강우석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더라고요. 스태프들과 교감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세요. 사람 강우석을 다시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죠.”

이 시대에 굳이 김정호라는 인물을 조명한 이유를 차승원은 이렇게 해석했다. 그리고 감독의 선택에 십분 공감했다.

“우리 사회가 그런 인물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누군가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주고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요. 요즘은 그러지 않잖아요. 오히려 남을 희생시키지…. 나는 그렇게 못하더라도 한번쯤 되새겨 봐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