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김포 월곶면 포내리에 위치한 문수산성교회(황인근 목사) 앞마당에는 독특한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황토와 짚을 섞어 만든 흙집 ‘민들레농부’다. 66㎡(약 20평) 크기의 아담한 건물이지만 이곳은 언젠가부터 마을의 명소가 되었고,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까지 하고 있다.
건물이 예쁘고 독특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교회에 흙집 공법 등을 문의하는 연락만 매년 20∼30건에 달한다고 한다. 교인이 50명도 안 되는 작은 시골교회인 이곳에 민들레농부 같은 흙집이 들어선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일 문수산성교회를 찾아 민들레농부의 탄생 스토리를 들어봤다.
농부 교인들이 직접 친환경 찜질방 건축
이야기는 2012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교회에는 공용 화장실이 없어 교인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재래식 화장실이 있긴 했지만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다. 교인들이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눌 공간도 없었다. 문수산성교회는 1652㎡(약 500평) 넘는 대지에 예배당만 덩그러니 있는 교회였다.
황인근(41) 목사와 교인들은 화장실이 있는 식당을 짓자는 데 뜻을 모았다. 하지만 문제는 비용. 교인들의 3분의 2는 농사를 짓는 60대 이상 고령층이어서 공사비 마련이 쉽지 않았다.
결국 황 목사와 교인들은 직접 건물을 짓기로 했다. 양파망에 진흙을 넣어 쌓아올리는 친환경적인 공법을 생각해냈다. 이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진흙에 짚을 넣어 개고, 양파망에 흙을 넣어 나르며 보금자리를 만들어나갔다. 공사에는 아흔 살 넘는 교인부터 열 살짜리 꼬마까지 동참했다.
흙집을 지은 건 이 같은 공법이 ‘친환경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황 목사는 4년 전 공사를 시작할 때를 회상하며 “교인들과 다같이 흙장난 하는 기분으로 집을 지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생명을 지키는 건 교회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흙으로 건물을 지으면 언젠가 이 건물이 무너져 사라지더라도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셈이잖아요? 그래서 흙집을 지은 겁니다. 어르신 중에는 ‘시멘트로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신 분도 계셨어요. 하지만 흙으로 짓자고 계속 고집을 부렸죠(웃음).”
건물 안에 교인들은 물론이고 연로한 주민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고, 결국 찜질방 시설도 들어서게 됐다. 난로를 만들어 나무를 때고, 열기가 구들을 통해 전해지는 ‘로켓매스히터(Rocket Mass Heater)’ 방식을 활용한 찜질방 시설이다.
근사한 불가마가 있는 일반 찜질방에 비하면 소박한 규모였다. 하지만 민들레농부의 찜질방은 교회의 자랑거리가 됐다. 찜질방은 매년 11월 초부터 이듬해 봄까지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금요일과 주일에 가동된다. 땔감은 황 목사와 교인들이 직접 구한다. 이들은 가을이 완연해지는 10월 말이면 동네 뒷산에 오른다. 산림청이 죽은 나무 등을 벌목해 쌓아놓은 것을 교회로 옮긴다. 크고 무거운 나무는 밧줄로 묶어 옮기기도 한다. 운반한 나무는 1년간 건조해 사용한다. 땔감이 부족하면 한겨울에 다시 산에 오른다. 땔감 준비는 이 교회의 중요한 월동 준비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흙집에 민들레농부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황 목사는 “매년 봄이면 교회 주변에 하얀 민들레가 지천으로 핀다는 점에서 착안한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민들레가 많이 피니 ‘민들레’라는 단어를 먼저 생각했어요. 그리고 교인 중 농민이 많아 ‘농부’라는 단어를 붙여 민들레농부라고 짓게 된 거죠. 교회 주변에 들꽃이 많이 피어서 매년 봄이면 들꽃을 꺾어 강대상 주변을 장식하기도 합니다.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민들레농부 한쪽 벽에는 이 교회 김영득(43) 권사가 만든 십자가 수십 점이 걸려 있었다. 김 권사는 기도할 때 손에 쥐고 사용하는 ‘손 십자가’로 유명한 ‘십자가 목수’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김 권사는 “문수산성교회는 벼가 익어가는 들판에 자리 잡은 자연 속 교회”라며 “교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충실히 섬기며 살아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생명을 지키고 지역을 섬기는 교회
공사를 진행하며 난관에도 자주 부딪혔다. 흙집의 특성상 비가 오면 일껏 쌓은 벽이 무너질까 걱정해야했다. 실제로 공사 도중 벽이 무너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과정을 이겨내고 2013년 9월 민들레농부는 완공됐다. 400일 넘게 교인들이 힘을 모아 지은 건물이었다.
현재 민들레농부는 교회 식당이자 아이들 놀이터 역할도 하고 있다. 매주 첫째 주일이면 교인들은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린 뒤 민들레농부로 자리를 옮겨 점심을 먹는다. 민들레농부 안에는 나선형 나무계단이 있는데, 계단을 올라가면 아담한 다락방이 나온다. 아이들을 위해 만든 작은 놀이터다.
특이한 건 이 교회에서는 일회용품을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들레농부가 입소문을 타면서 이곳은 가끔 외부 단체나 교회의 수련회 공간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단체나 교회 소속 방문자들 역시 일회용품을 사용해선 안 된다.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첫걸음은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데서 출발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문수산성교회에는 장로 직분을 가진 교인이 없다. 1985년 세워져 30년 넘는 역사를 가졌지만 장로가 없는 건 이색적이다. 황 목사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신 분은 많지만 다들 장로를 맡아달라고 하면 사양하신다”고 했다.
“어르신들 대다수가 ‘나는 자격이 안 된다’며 거절하시더라고요. 하지만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은 대단합니다. 제가 이곳에 2010년 3월에 부임했는데, 정말 좋은 교인들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어요.”
황 목사는 주민들 경조사에 자주 참석한다. 매년 추수감사절이면 마을 잔치도 연다. 지난해 교회에서는 설립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는데, 마을 이장을 비롯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주민 상당수가 참석했다.
황 목사는 “민들레농부 봉헌 예배 당시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을 역임한 신경하 감독님이 설교를 통해 생명을 지키고 지역을 살리는 교회가 돼 달라고 당부하셨다”며 “이러한 사명을 가지고 교회와 마을이 지금처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역을 섬기는 교회가 되겠다”고 말했다.
김포=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한국의 생명교회-문수산성교회] 찜질방까지… 넉넉하게 주민 품는 ‘민들레농부’
입력 2016-09-06 2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