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미국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6차전 때였다. 시카고 컵스는 플로리다 말린스를 맞아 3승 2패를 거두며 대망의 월드시리즈 진출에 단 1승만을 남겨 놓고 있었다. 지긋지긋했던 ‘머피의 저주’를 깰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6차전도 종반까지 시카고의 페이스였다. 8회 1사까지 3-0으로 앞서 있었다. 그런데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8회 1사 주자 2루 상황에서 플로리다의 루이스 카스티요가 날린 큼지막한 파울타구를 잡으려고 시카고 좌익수 모이세스 알루가 팔을 뻗었지만 스티브 바트만이라는 관중이 타구를 손으로 건드려 버렸다. 바트만의 돌발행동 때문에 분위기는 플로리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그리고 시카고는 그 이닝에 무려 8점을 내주며 패했다. 시카고는 마지막 7차전에서도 패했고, 꿈에 그리던 월드시리즈 진출은 실패했다.
이와 정반대 결과도 있었다. 뉴욕 양키스와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맞붙은 1996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1차전에서 당시 양키스 신인이었던 데릭 지터는 8회 우익수 뒤로 큼직한 타구를 날렸다. 볼티모어 우익수 토니 타라스코가 펜스 위로 손을 뻗어 잡을 수 있는 타구였다. 그런데 11살짜리 어린이가 타라스코보다 먼저 글러브를 뻗어 공을 펜스 뒤에서 잡았다. 우익수 플라이가 홈런으로 둔갑했고 양키스는 기세를 몰아 챔피언십시리즈에 이어 월드시리즈까지 제패했다.
2006년 WBC 한·일전에서도 관중이 공에 손을 댄 상황이 발생했다. 8회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가 파울 타구를 잡으려고 글러브를 내밀다 관중의 방해로 잡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치로는 타구를 잡지 못하자 그 관중에게 버럭 화를 냈다. 한국은 2대 1로 승리했다.
이렇듯 야구에선 관중이 홈런이나 파울 타구를 건드려 경기 흐름을 바꾸고 대기록이 무산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 4일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전에선 타구가 외야로 날아갈 때마다 엄청난 함성이 울러퍼졌다. ‘국민타자’ 이승엽의 한·일 통산 600홈런과 KBO리그 사상 첫 1400타점 때문이었다. 이승엽은 통산 600홈런에 단 두 개, 1400타점에 5점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 기대에 걸맞게 이승엽은 0-3으로 뒤진 4회 1사 1루에서 외야 우중간으로 큼지막한 타구를 날렸다. 그런데 글러브를 낀 한 어린이가 그 공을 낚아챘다.
야구규칙 3.16에 따르면 ‘타구나 송구에 대해 관중의 방해가 있었을 때는 방해와 동시에 볼 데드가 되며, 심판원은 방해가 없었더라면 경기가 어떠한 상황이 되었을 것인가를 판단해 후속조치를 취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심판은 이 규정을 적용해 이승엽의 타구를 2루타로 처리했다. 정상적인 플레이가 진행됐다면 홈런이나 타점을 기록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결국 그 어린이의 방해로 이승엽은 타점 하나를 도둑맞은 셈이 됐다.
그래도 이승엽은 득달같이 화를 냈던 이치로와 달랐다. 이승엽은 잠시 아쉬운 표정을 짓더니 다시 특유의 ‘씽긋’ 웃음을 보였다. 대인배의 면모를 과시한 것이다. 통상적으로 경기를 방해한 관중은 퇴장을 당한다. 하지만 심판은 이승엽의 타구를 건드린 관중이 어린이인 점을 감안, 퇴장시키지 않고 다른 좌석으로 이동시켰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관중 때문에 울고 웃은 대기록들
입력 2016-09-05 21:44 수정 2016-09-06 0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