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오종석] ‘절벽’ 현상에 내몰린 대한민국

입력 2016-09-05 18:37

대통령은 마이웨이를 고집하고 있다. ‘우병우 감싸기’에 눈과 귀를 막고 국민과는 불통도 불사한다. 신임 장관들과 경찰청장은 인사청문회에서 서민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온갖 특권과 특혜가 드러났어도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데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는다. 당대표를 비롯한 여당 의원들은 ‘힘 없는’ 소수인양 수시로 국회를 보이콧하고 운동권 학생들처럼 데모도 한다. 거대 야당 의원들은 벌써 정권이라도 잡은 것처럼 힘자랑을 하며 국정을 비웃는다. 정치권에서 민생은 없고 당파와 힘겨루기만 난무한다. 허탈한 국민들은 ‘정치절벽’을 체감한다.

지난 2일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2분기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1년9개월 만에 마이너스 성장(-0.4%)을 기록하며 5년6개월 만에 최저치다. 실질 GNI는 국민이 일정 기간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의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도 지난해 4분기부터 3분기째 0%대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7월 산업활동동향에선 생산(-0.1%), 소비(-2.6%), 투자(-11.6%)가 모두 일제히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경제절벽’이 눈앞이다.

흙수저는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쳐도 금수저나 은수저를 따라갈 수 없다. 청년취업률은 갈수록 떨어져 젊은이들의 일자리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빈부격차는 더 악화되고 중소기업,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삶은 더 팍팍해지고 있다. 금수저, 은수저와 흙수저의 차별이 심화되면서 사회적 격차와 불평등 구조가 만연해 있다. 실질적인 ‘사회절벽’ 현상이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대한민국이 심각한 ‘절벽증후군’에 빠져들고 있다. ‘절벽’ 현상은 절벽에서 추락하듯 큰 충격을 받는다는 의미로 등장한 신조어다. 대규모 정부 지출 감소와 세금 인상이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입히는 현상을 가리키는 재정절벽, 경기 불황 증세에 대한 불안심리로 소비를 전혀 하지 않는 소비절벽 등 경제용어에서부터 비롯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8·15 경축사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함께 가는’ 공동체 의식으로 함께 노력하면 우리는 할 수 있다”며 자긍심 고취를 호소했다.

어느 국민이 대통령의 말처럼 희망과 자긍심을 갖고 싶지 않겠는가. 왜 ‘한국이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신조어 헬조선이 유행하겠는가. 지금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한 발만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벼랑 끝에 서 있는 형국이다. 정치권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대권만을 겨냥해 사생결단식 정쟁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경제는 불황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미국 금리 인상, 김영란법 시행 등 경기 악화 요인만 첩첩산중이다. 사회는 이념갈등, 빈부격차 심화 등으로 피폐해지고 있다.

정책절벽, 외교절벽, 재정절벽, 무역절벽, 생산절벽, 소비절벽, 고용절벽, 인구절벽, 소통절벽 등 나라 곳곳에선 ‘봠봠절벽’ 소리만 난무한다. 국민들이 그만큼 불안하고 불편하게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국민을 감싸 안아야 할 대통령과 정부, 정치권은 정작 심각성을 망각한 채 손을 놓고 있거나 주판알만 튕기고 있다.

더 이상 국민이 절벽으로 내몰리지 않기를 희망한다. 이제부터라도 서로 공존할 수 있는 협치, 협업, 상생, 소통이 이뤄지도록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와 정치권이 심각하게 고민하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추석 명절이 며칠 남지 않았다.

오종석 편집국 부국장 js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