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미스터리’… ‘원인 불명’은 절반 넘는데 남성 비율 한 자릿수 그쳐

입력 2016-09-06 00:26

우리나라 난임 문제의 가장 기이한 현상은 정부 통계에서 ‘원인 불명’이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반면 남성 난임 비율은 임상학적 평균보다 훨씬 낮은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이런 ‘난임 미스터리’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벌어진 것일까.

보건복지부의 ‘2014년도 난임부부 지원사업 결과분석 및 평가’에 따르면 난임시술 지원 대상자 중 난임 원인을 파악할 수 없는 비율이 인공수정은 77.2%, 체외수정은 51.9%나 됐다. 국내외 난임 임상시험에서 원인 불명의 비율이 20∼30% 수준임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유독 정부 조사에서만 원인 불명이 높게 집계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키’는 다른 임상시험에 비해 현격히 낮은 남성 난임 진단 비율에 있다. 복지부의 2014년 조사에서 남성이 난임 원인으로 지목된 비율은 인공수정과 체외수정 모두 8.2%에 불과했다. 복지부도 평가서에서 ‘일반적인 임상시험에서 남성 난임이 30% 이상으로 보고된다’고 적시하는 등 복지부 조사 결과는 일반적인 의학적 상식으로 쉽게 설명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인 불명으로 진단된 난임 사례 가운데 남성 난임이 상당수 포함됐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복지부도 같은 의견을 평가서에서 제시했다.

정부의 난임 원인 조사에서 원인 불명의 과다집계와 남성 난임의 과소집계는 정부의 기계적 난임 지원사업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부가 인공수정과 체외수정에 대해 각각 3회씩 시술비를 지원하기 때문에 지원비를 받으려는 시술기관들이 정확한 원인 분석 없이 ‘마구잡이식 시술’을 남발한다는 것이다.

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사무총장은 5일 “인공수정 시술은 여성은 물론 남성에게도 이상이 없어야 임신이 가능하다. 그러나 정부가 시술 횟수만 정해 인공수정과 체외수정을 무조건 지원하다 보니 체외수정을 받아야 할 사람이 인공수정도 그냥 받게 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난임 시술기관이 인공수정 시술을 진행하기 위해 남성에게 난임 원인이 있는 경우에도 일단 원인 불명으로 처리한 후 무작위 시술을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 조사에서 남성 원인은 다른 임상시험 결과보다 낮게 잡히고, 원인 불명은 높게 집계되는 조사 오류의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설명이다.

김 총장은 “교과서적 난임 원인 비율은 여성 40%, 남성 40%, 원인 불명 20%”라며 “일반적으로 인공수정 시술 성공률이 10∼15%라는 점을 감안하면 복지부 전수조사에서 인공수정 시술 성공률이 0%인 기관이 비정상적으로 많은 것도 조사 오류의 부작용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우리나라만의 ‘기괴한 난임 원인 통계’를 바로잡고 난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난임 지원 정책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정확한 난임 원인을 분석해 이에 따른 적합한 시술에 지원을 집중하는 정책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글=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