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생. 올해 나이 마흔. 이미 5번의 인공수정과 5번의 체외수정을 한 김미선(가명)씨는 요즘 다시 ‘희망고문’에 빠져 있다. 4년 전 5월, 요즘 추세라면 그리 늦었다고 할 수도 없는 나이에 결혼을 하면서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민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집안 대대로 임신도 잘되는 편이었다. 난임은 남의 얘기인 줄 알았다.
결혼 후 3년이 다 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난임병원을 찾았다. 김씨는 난소 나이 검사로 불리는 AMH(항뮬러관호르몬) 수치를, 남편은 정자 양과 운동력 등을 검사했다. 부부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김씨는 오히려 제 나이보다 가임력이 좋다는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선 시술을 권했다.
김씨는 지난해 처음 인공수정을 시작해 여름부턴 체외수정을 병행했다. 흔히 ‘시험관 아기’로 표현되는 체외수정을 하려면 한 번에 많은 난자를 얻기 위해 인공수정 때보다 센 과배란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복수가 차 배가 부풀어 오르고 몸 전체가 붓는 부작용이 따른다. 이때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김씨 역시 체외수정을 시작할 무렵 6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냈다.
가장 힘든 건 널뛰는 감정이었다. 배란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내가 회사까지 관두고 왜 이러고 있어야 하나” “아이가 인생의 전부인가” 하는 회의에 우울감이 몰려왔다. 그러다 수정란을 이식한 뒤엔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배가 콕콕거리기라도 하면 ‘혹시 착상이 됐나’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가 안 되면 좌절하고, 마음을 추슬러 다시 배란 주사를 맞는 일이 반복됐다. 그나마 양가 어른들이 임신을 재촉하지 않아 가족 불화는 덜했다.
시술비도 부담이었다. 체외수정을 한 번 할 때마다 정부 지원 190만원 말고도 300만원 넘는 돈이 들어갔다. 정부 지원은 신선배아만 이식할 경우 4번, 동결배아(수정 후 남은 배아를 보관했다가 다음 주기에 과배란 유도 없이 이식)를 병행하면 6회가 끝이다. 이후엔 100% 본인 부담이다. 김씨는 “난임 부부 사이에선 시술비만 모아도 1년에 쏘나타 한 대씩 뽑는다는 얘기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난임 부부들은 내년 10월 시행되는 시술비 건강보험 적용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정부는 보험적용 등이 담긴 난임 대책을 지난달 말 발표했지만 이미 1년 전부터 보험 얘기가 나오면서 시술비만 껑충 뛰었다. 배아 사진을 촬영해주거나 새로운 검사를 추가하는 식이다. 김씨는 “올해 들어 시험관 시술 비용이 작년보다 100만원 정도 올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 사례는 우리나라 난임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체외수정을 한 여성의 59.6%, 인공수정을 한 여성의 57.0%가 불안 고립 우울감 등의 정신적 고통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했다는 응답자도 10명 중 1명(체외수정 13.7%, 인공수정 10.4%)이나 됐다. 정신적 고통은 일상생활에서의 무력감, 대인관계 위축으로 이어지고 가족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 여성 대부분이 대학 졸업 이상의 고학력자(체외수정 83.3%, 인공수정 89.1%)라는 점, 과반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최근 만혼 풍조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전업주부 중엔 김씨 같은 ‘경단녀’(경력단절여성)도 포함돼 있다. 2014년 난임 시술비를 지원받은 7만6416명 중 1만9748명(체외수정 1만2233명, 인공수정 75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인구보건복지협회에 위탁해 의료·심리 상담을 시범운영하고 있다. 시행 초기 4개월간 협회를 직접 찾은 여성은 38명, 이들의 주된 상담 내용 역시 불안 우울 스트레스(94.7%), 가족 갈등(63.2%)이었다.
글=권지혜 기자 jhk@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전진이 기자
실패 10번 ‘희망고문’… 몸도 마음도 지쳐간다
입력 2016-09-06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