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이해’ ‘무능력’ 한심한 정부 대응

입력 2016-09-05 00:31

지난 2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의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 IFA에 참석한 LG전자 조성진 사업본부장은 한진해운 법정관리 여파를 걱정했다. 그는 “(물류 차질이) 굉장히 걱정돼 출장길에도 실무자들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다”며 “백방으로 대안을 찾고 있는데 많은 기업들이 같은 상황이라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수출입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도 4일 오전 서울에서 대책회의를 진행한 뒤 곧바로 물류대란의 최전선인 부산항으로 내려갔다. 신국제여객터미널에서 부산지역 항만 관련 업·단체를 만난 자리에서 김 장관은 “물동량 측면에서 한진해운이 처리했던 환적화물의 이탈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부산항만공사는 비상대책본부를 구성, 중국 일본 유럽대표부를 통해 글로벌 해운시장 동향, 화주 동향, 부산항 환적화물 동향을 밀착 점검하고 있다. 유럽대표부는 현지 전문기관인 시인텔(SeaIntel) 등과 논의한 내용을 보고하며 “한진해운 물량을 어떤 선사가 운송하느냐에 따라 부산항 환적 물량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럽대표부는 북중국으로 향하는 화물 등 한진해운이 맡아온 화물을 선점하기 위한 선사들의 쟁탈전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에버그린 등 중국계 선사들이 한진해운 물량을 가져갈 경우 부산항 환적화물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 유럽대표부는 “한국정부의 신속한 대응책 마련과 공식 발표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대표부의 보고는 좀 더 심각하다. 중국 항만에서 한진해운 컨테이너선 6∼7척이 출항 억류 조치를 받았고 3∼4척이 입항 허가를 받지 못했다. 현지 주재원들의 안전 문제도 대두됐다. 상하이는 물론 다롄, 톈진, 충칭, 선전 등 한진해운 주재원들의 동향을 채권자들과 현지 직원들이 감시하는 분위기까지 감지되고 있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파장이 확산되면서 정부는 허술한 대응 시스템과 무능력으로 혼란을 키웠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날 정부는 해수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비상대응반을 9개 부처가 참여하는 범부처 총력 대응체계로 전환했다. 지난달 30일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뒤 엿새 만에 나온 것이다. 법정관리 신청 직후 기획재정부와 해수부는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인한 피해액을 묻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법정관리 결정이 해운업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 지나치게 금융논리에만 치우쳤다는 비판도 나온다. STX팬오션과 대한해운의 법정관리 사례를 한진해운에 그대로 적용했다는 것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STX는 컨테이너선 규모가 5%에 불과했고 대한해운은 벌크선 사업을 하던 곳”이라며 “한진해운은 컨테이너선 사업이 주체인 곳인데 두 회사와 같은 방식으로 법정관리를 진행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