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고래 선물은 챙기고… 푸틴 “쿠릴열도 양보 안한다”

입력 2016-09-05 04:02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오른쪽)가 3일(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악수하고 있다. AP뉴시스

지난 5월에 이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러시아를 다시 방문했으나 영토분쟁 중인 쿠릴열도 문제는 역시 해결되지 못하고 성과 없이 끝났다. 그나마 오는 12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키로 합의하면서 체면은 살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산케이신문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지난 3일(현지시간) 열린 동방경제포럼(EEF) 전체회의에서 양국 정상이 영토문제 해결의 필요성에는 공감했지만 기존 입장을 양보하지 않았다고 4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러시아는 영유권 분쟁 중인 4개 섬 중 2개 섬(시코탄·하보마이)을 반환한다는 내용의 1956년 일·소 공동선언 원칙을 고수했다. 일본은 4개 섬을 모두 되돌려 받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임기가 2년밖에 남지 않은 아베가 2개 섬 우선반환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거론됐으나 러시아에 협상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가 거셌다.

일본이 경제협력이라는 당근책을 제시했지만 러시아가 영토를 포기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를 합병하면서 국내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다. 쿠릴열도 문제로 여론을 자극하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 엄청나다. 때문에 푸틴은 일본의 경제협력을 환영하면서도 “섬을 양보할 생각은 없다”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오히려 러시아는 최근 쿠릴열도에 경제특구와 해군기지 건설을 계획하며 지배력을 높이고 있다.

콘스탄틴 칼라초우 러시아 정치분석가는 “일본은 쿠릴열도의 영유권 주장을 철회할 생각이 없고 러시아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두 정상은 주로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영토문제로 의견을 나눴지만 해결 전망은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푸틴의 소극적인 자세에도 불구하고 아베는 정상회담 내내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난 회담과 마찬가지로 푸틴을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불렀고 블라디보스토크의 세계 최대 해양수족관 개관식에도 참석했다. 일본은 이 수족관에 고래를 선물했다. 아베는 양국 정상회담을 매년 정례화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우리 세대가 용기를 갖고 책임을 다할 것”이라며 “70년 된 이 사태에 종지부를 찍고 양국의 다음 70년을 위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가자”고 말했다.

반면 푸틴은 영토문제에 말을 아꼈다. 그는 “(쿠릴열도는) 분명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하는 데 그쳤다. 다만 아베가 제안한 에너지 분야 등 러·일 8개 경제협력에 “유일하고 올바른 길”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푸틴이 예정대로 오는 12월 일본을 방문하면 11년 만의 방일이 된다.

러시아와 일본은 사할린과 홋카이도 사이의 쿠릴열도 4개 섬 영유권 분쟁을 6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글=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