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자산 인수 현실성 없어…” 구조조정案 도마에

입력 2016-09-05 00:29

한진해운 법정관리 파장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가 추진 중인 현대상선의 한진해운 우량자산 인수 방안도 전망이 불투명하다.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31일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선박, 해외 영업망, 영업 인력 등을 인수하는 대책안을 발표했으나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다음날 곧바로 “전혀 협의되지 않은 안”이라며 이례적인 반박 자료를 냈다. 내부적으로는 법원의 회생절차는 기업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정부가 청산을 전제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 아니냐며 불쾌한 기색이다.

파산법에 정통한 한 판사는 4일 “해외에서 한진해운의 입항이 거부되고, 선박이 억류되고 있는데 정부 고위관계자의 발언이 외신을 타면 정상 영업 복귀는 더 어려워진다”며 “회생절차 신청 후 시장 신뢰 회복을 위해 힘써야 하는데, 청산한다고 초를 치면 그냥 죽으란 얘기”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판사는 “정부에서 정책 대응을 할 거면 법원에 오기 전 채권단, 한진해운과 ‘이 정도는 남기고 회생계획안을 짜보자’ 이런 얘기를 하고 들어왔어야 한다”며 “이번엔 전혀 그런 계획이 없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는 설령 청산 절차가 진행돼도 해외 채권자와 선주 등 때문에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자산을 인수하지 못할 가능성도 높다고 봤다. 매각 절차가 경쟁 입찰로 진행돼 현대상선이 제일 높은 가격을 쓰지 않는 이상 변수가 많다는 것이다.

정부는 한진해운의 영업망 인수, 영업 인력 스카우트 등을 진행한다는 생각이지만 해운업계와 학계에서는 현실성 없는 얘기라고 선을 긋는다. 한국해운물류학회장을 지낸 성결대 한종길 교수는 “한진해운의 핵심 인력이 해외 글로벌 해운사로 가지 경영상황도 안 좋은 현대상선으로 갈 이유가 없다”며 “한진해운은 법정관리로 보내고 현대상선이 인수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상도의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현대상선이 한진의 영업망과 미국 롱비치터미널 지분 등을 인수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해외 화주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한국 국적 선사인 한진해운에서 이미 피해를 본 해외 화주들이 중국 등 다른 나라의 해운사에 일을 맡기려 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고객을 확보하지 못하면 그냥 인력비 등 고정비용만 나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현대상선의 대체 선박 투입 역시 현대상선이 한진해운과 다른 얼라이언스(해운동맹)에 속했었기 때문에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한 교수는 “기존 얼라이언스 회사들도 배가 남아도는 상황인데 자기들 노선에 현대상선 선박이 들어오는 걸 쉽게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진해운을 최대한 살리고 현대상선과 경쟁체제로 두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정부 대책이 지지부진한 사이 해외 글로벌 해운사는 반사이익을 누릴 전망이다. 지난 1일 코펜하겐증시에서 세계 1위 해운사인 덴마크 머스크 주가는 1.45% 올랐다. 중국원양해운, 독일 하팍로이드 등 주요 해운사의 주가도 상승했다.

글=나성원 기자 naa@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