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주의 1318 희망공작소] 교실에서 살아남기

입력 2016-09-05 19:32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줘서 고맙다.”

상담을 하다 내담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몇 번 있다. 예를 들어 장기간의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사고처럼 극한 상황을 견디고 버텨온 내담자들을 만날 때였다. 상담자로서 의례적인 말을 한 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극심한 고통을 딛고 살아남은 이에게 건넨 진심어린 말이었다.

최근 청소년 내담자들을 만나면서 이런 비슷한 말을 하게 된다. 놀랍게도 그들은 대개 학교폭력의 생존자, 소위 ‘왕따’를 당하고도 수년간 버텨온 아이들이었다. 분명한 것은 사춘기에 겪은 왕따의 경험은 극도의 트라우마 상황에 견줄 만큼 강하고 후유증 또한 전 생애에 영향을 미칠 만큼 심각하다는 점이다.

무시와 놀림처럼 은근한 따돌림이나 언어폭력, 물리적 폭력까지 왕따의 양상은 다양하다. 어떤 면에선 이 같은 폭력이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익숙한 행동으로 여길 수 있지만 최근 학교에서 발생하는 왕따 현상엔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 바로 폭력의 일반화와 집단성이다. 예전처럼 공격성이 높은 한두 명, 소위 일진으로 불리는 소수에 의한 폭력이 아니란 의미다.

최근 교실에서 일어나는 왕따 현상에는 모든 아이들이 개입되어 있다. 핵심 가해자가 있지만 주변엔 적극적이고 소극적인 조력자, 여러 수준의 방관하는 아이들이 항상 존재한다. 사소하고 다양한 이유로 피해자 역할을 하게 된 아이들은 무슨 행동을 하든 왕따라는 꼬리표를 달고 집단적 거부를 일상적으로 당한다. 심지어 학년과 학교가 바뀌어도 그 꼬리표는 달라지기 어렵다.

청소년은 사춘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 이 시기에 집단적으로 가해지는 ‘납득되지 않는 거부와 괴롭힘’은 여러 면에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특히 희생자로 지목된 아이들은 치명적 상처를 받는다. 자신과 타인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

집단적 폭력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했던 아이들 또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 양심의 소리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을 상실해간다는 점에서 일종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교실에서의 폭력 문제는 더 적극적으로 예방돼야 한다. 아이들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참여하는 집단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다각도의 개입이 필요하다.

우리는 수많은 폭력에 익숙해져왔고 이미 폭력에 무감각해진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누군가 이유 없이 희생되고 고통 받더라도 나에게만 피해가 오지 않으면 눈을 감아버리는 방식을 대다수가 선택하고 있다. 이런 어른들의 모습이 아이들의 세계에서 그대로 재연되는 것은 아닐까.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할 시점이다.

한영주<한국상담대학원대 15세상담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