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불법체류인 거, 경찰에 신고한다.” 의처증이 있던 남편은 필리핀인 아내 C씨(25)를 때릴 때마다 이렇게 협박했다. 국적을 얻으면 도망갈 거란 생각에 일부러 ‘미등록’ 상태의 불법체류자로 남겨뒀다. 원래는 결혼 후 2년이 지나면 남편이 신원보증인이 돼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견디다 못한 C씨는 지난 1월 피해자 쉼터를 찾았지만 1주일도 머무르지 못하고 집에 돌아갔다. 남편의 보복이 두려워서였다.
가정폭력을 당하는 이주여성들에게 ‘체류 문제’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미등록 이주여성의 체류 여부는 사실상 남편의 결정에 달려 있다.
불법체류 결혼이주민은 매년 증가세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불법체류 결혼이주민은 2012년 335명(0.1%), 2013년 1469명(0.8%), 2014년 3536명(1.6%) 2015년 3482명(1.7%)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가정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주여성이 국적을 취득해도 문제는 남는다. 경제적 자립이 어려워 선뜻 남편 곁을 떠날 수 없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2014년 다문화가정 이혼상담 통계에 따르면 고정적 월수입이 없는 이주여성이 92.4%에 달했다. 서툰 한국어도 피해 사실을 알리는데 장벽이 된다. 경찰 관계자는 4일 “전화로 신고가 들어왔을 때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바로 ‘외국인이냐’ 묻기가 조심스럽고 현장에 출동했을 때 상황 파악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주여성들은 가정폭력에 시달려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이다. 여성가족부가 이주여성의 긴급 상담을 지원하기 위해 ‘다누리콜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인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3년간 상담 건수는 9000건이 늘었는데 상담원은 1명 증가하는데 그쳤다. 다누리콜센터 관계자는 “예산 문제 등으로 상담원 수를 크게 늘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주여성들이 직접 방문해 상담받을 수 있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도 있지만 가정폭력 전문기관은 아니다. 고명숙 전국이주여성쉼터협의회장은 “다문화가족센터는 생활 전반에 대한 상담을 진행하기 때문에 폭력 피해 이주여성을 전담하는 상담기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정폭력을 피해 머물 수 있는 쉼터도 부족하다. 정부가 지원하는 이주여성 쉼터 25곳은 2010년부터 매년 입소 정원이 초과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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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가족 안의 괴물] “너 불법체류인 거 신고한다”… 남편이 툭하면 협박
입력 2016-09-05 0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