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페이스북 친구는 천명이 넘는데 그중 대화를 자주 하고 친하게 지내는 이들은 거의 여성이다. 대화를 하다보면 끝까지 마음이 잘 통하고 죽이 잘 맞는 친구들은 대부분 멀리 살고 있다. 그녀들은 가족이 있지만 고독하다. 분명 사랑하고 있고, 사랑받고 있지만 외롭다. 나는 그 고독감과 외로움을 잘 아는데, 왜냐하면 나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시인, 작가라는 말보다 ‘주부’라는 말을 먼저 하게 된다. 나는 글을 써서 내 생활을 유지하는 것보다 주부로 가사노동을 담당하고 있어서 지금의 내 생활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전문 능력을 쌓다가 최고로 능력을 발휘할 나이에 결혼해,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고학력의 여성들. 지금은 초·중·고에 다니는 아이를 키우며 환경·교육 문제, 생활의 최전방에 있는 이들. 그녀들이 대부분 나의 친구들이다. 그녀들은 지적이고 능력도 많지만 결혼과 육아로 자신의 경력을 끊을 필요가 없는, 오히려 먹여 살릴 처자식 때문에 그 경력에 정점을 찍어야만 하는 남성의 생활 파트너 역할을 하느라 자신의 능력과 끼를 대부분 녹슬게 방치해둘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것을 거부한 솔로인 여성들이 직장에서 고군분투할 때 남성들은 가장 대접을 받으며 아내가 차려준 밥을 먹고 아내가 빨아준 옷을 입고 출근한다. 집에 있는 그녀의 몫까지 두 배의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맞벌이 부부는 형편이 조금 다를 수 있지만 가사노동은 여전히 ‘그녀의 일’로 남아 있고, ‘그’가 하면 당연한 일을 하는 건데도 그녀는 고마워해야만 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가 이 사회를 망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이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역할, 어머니, 아내, 며느리 역할을 동시에 안 하겠다고 손을 놓으면 한국의 가부장제는 바로 무너질 것이다. 마치 캄보디아에 있다는 오래된 사원의 나무들처럼. 나무 때문에 그 사원이 무너지고 있다고 하지만 막상, 그 나무들이 없었다면 그 사원은 벌써 붕괴되고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유형진(시인), 그래픽=공희정 기자
[살며 사랑하며-유형진] 오래 된 사원의 나무가 된 그녀들
입력 2016-09-04 1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