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의장-새누리 ‘여론에 밀려’ 한 발씩 양보

입력 2016-09-02 21:40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가 2일 오후 국회 의장실에서 추경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 개최 직전 회동을 갖고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정 의장,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서영희 기자

정세균 국회의장의 정기국회 개회사를 문제 삼으며 시작됐던 새누리당의 보이콧은 2일 오후 28시간 만에 끝이 났다. 정 의장과 새누리당은 국민의당 소속인 박주선 국회부회장이 의사봉을 잡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이번 싸움은 이례적인 형태로 진행됐다. 통상 벌어졌던 여야 간 격돌이 아니라 여당과 현직 국회의장 사이의 갈등이었기 때문이다. 야당은 제3자였다.

새누리당은 정 의장의 독단적 의사 운영에 대해 기선 제압했다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 의장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민생과 국회 정상화를 위한 결단이라는 호평이 나온다. 하지만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문제와 사드 배치 문제를 자신 있게 제기했던 정 의장이 새누리당 요구를 수용하면서 모양새를 구겼다는 비판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새누리당의 보이콧 행태를 문제 삼으며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새누리당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정 의장에게 요구한 것은 세 가지였다. 의장직 사퇴와 사과, 그리고 국회부의장에 사회권을 이양할 것이었다. 여당 내부에서도 정 의장이 요구사항을 수용할 가능성을 높지 않게 봤다. 보이콧이 장기화될 경우에 대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하지만 정 의장은 이날 오후 전격적으로 사회권 이양 카드를 받아들였다. 정 의장이 이 같은 선택을 한 것은 자신의 문제로 추가경정예산안 통과가 계속 미뤄질 경우 민생과 경제 살리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새누리당은 “정 의장 때문에 민생 현안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고 압박했다. 정 의장 입장에서는 추경이 늦어질 경우 ‘독박’을 쓸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참모들은 새누리당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을 반대했으나 정 의장이 참모진을 설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장은 기자들과 만나 “국민 여러분께 제때 민생 현안이 처리되지 못한 것에 대해 송구하게 생각하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 개회사와 관련해 새누리당 의원들께서 많은 지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무겁게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정 의장 측근은 “국민들께 사과한 것이지,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사과한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우리의 힘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만족감을 감추지 못했다. 야당은 추경 통과에는 안도하면서도 새누리당을 비판했다. 더민주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추경 민생 예산이 제일 중요한 시기인데 여당이 늦게라도 돌아와 처리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며 “여당으로서 남은 정기국회 동안 본연의 자세를 지켜줄 것을 정중하게 요청한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도 “정 원내대표는 믿지만 새누리당은 못 믿겠다”고 비꼬았다.

이번 극적 타협으로 한 고비는 넘겼지만 여야가 충돌해 정기국회를 파행으로 몰고 갈 가능성은 여전히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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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하윤해 문동성 기자 justice@kmib.co.kr, 사진=서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