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즈 운하 측, 통행료 선불 요구하며 선박 진입 차단

입력 2016-09-02 17:55 수정 2016-09-02 21:32
한진해운 법정관리에 따른 수출입 화물 운송 차질과 관련해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해운빌딩에서 열린 ‘수출입 화물 비상운송대책 회의’에 참석한 해운업계 관계자가 물을 마시고 있다.뉴시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에 따른 운항 차질 사태가 국내외에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수에즈 운하 측은 통행료를 선금으로 요구하며 한진해운 배의 통행을 막았다. 연료를 구하지 못해 멈춰서는 배도 잇따르고 있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2일 “회사 선박이 이집트에서 수에즈 운하 관리 당국의 통행료 현금 지불 요구로 운하에 진입하지 못했다”며 “원래는 운하 통행료도 다른 비용처럼 정해진 날짜에 정산하는데 이번엔 선금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수에즈 운하는 중동·아시아의 홍해와 유럽의 지중해를 연결하는 192㎞의 물길이다. 이 운하를 지나지 못하면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가거나 육로를 이용해야 한다.

수에즈 운하 측이 선금을 요구한 건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통행료를 제때 받지 못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수에즈 운하 통행료는 편도 70만 달러(7억8200만원) 정도다. 현재 한진해운 선박은 홍해 북쪽 바다에서 엔진을 멈춘 채 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상하이·닝보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는 컨테이너선이, 중국 바오산과 싱가포르에서는 벌크선이 연료를 구하지 못해 운항하지 못하고 있다. 이 역시 거래 업체가 기름값을 선금으로 요구해 벌어진 일이다.

한진해운이 운영하는 사선 37척, 용선 61척 등 선박 98척 중 45척이 운항 중지 상태다. 컨테이너선 41척, 벌크선 4척이다. 한진해운 선박이 입·출항 등 정상 운항을 하지 못하는 곳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7개국인 것으로 파악됐다.

광양과 중국 청도·샤먼·닝보·얀티엔, 싱가포르, 일본 나고야, 인도 나바샤바 등에서는 하역 업체가 작업을 거부했다. 이들 업체는 밀린 하역료 등 대금을 먼저 지급하지 않으면 작업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는 입항이 거부됐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물동량을 처리하는 같은 주 롱비치에서는 일부 선박이 항만 터미널에 접안하고도 화물을 내리지 못했다. 입항한 뒤 출항하지 못하는 선박도 있다. 한진해운 선박 3∼4척은 롱비치 항구에 들어가지 못한 채 공해상을 떠도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진해운 컨테이너선이 하역 작업을 거부당해 대기 중인 지역은 중국 상하이·샤먼·싱강·닝보, 싱가포르, 일본 요코하마·모지, 호주 시드니, 미국 롱비치·사바나, 캐나다 프린스루퍼트, 스페인 발렌시아, 독일 함부르크 등이다. 부산항에서 선박 입·출항 시 필요한 하역 서비스가 재개됐지만 여전히 수출입 물동량 처리에는 차질을 빚고 있다.

한진해운을 통해 화물을 운송해온 제조업체들은 납기 지연으로 피해가 불가피해졌다. 전날까지 무역협회에 피해 신고를 한 업체는 15곳이다. 주요 항로가 미주·유럽·아시아인 D사는 유럽·미주 지역 항구에 2개월 치 납품 물량이 대기 중이다. 상황이 장기화되면 제품에 녹이 슬어 사용이 불가능해진다. K사는 한국 화력발전소에 납품할 화물 59TEU(길이 약 6m짜리 컨테이너)가 대기 중이다. 이 중 57TEU가량이 베트남 호찌민에 있다. 화물 납기가 지연되면 수입업체로부터 거래중단 통보를 받을 수 있어 전전긍긍하고 있다.

현재까지 이들 업체의 전체 피해 규모는 434만 달러(약 48억5430만원)로 추산된다. 상황이 악화되면 화주와 육상 수송업체 등이 한진해운을 상대로 대금 지급과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쏟아낼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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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욱 허경구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