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2일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사진이 한 장 있었다. 그리스를 향해 있는 터키쪽 해안가 모래에 파묻힌 채 숨져 있는 3세 아이의 사진이었다. 시리아 출신의 에일란 쿠르디였다. 쿠르디는 내전을 피해 유럽으로 가려다 지중해에서 배가 전복돼 엄마와 두 살 터울 형과 함께 익사했다. 쿠르디가 떠난 지 1년이 지났지만 난민과 관련해 세상은 나아진 게 아무것도 없다.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된 게 2016년 9월의 현실이다.
쿠르디의 아버지 압둘라 쿠르디도 1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 독일 빌트지 등과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현실을 여러 차례 원망했다. 압둘라는 숨진 가족을 시리아에 묻은 뒤 지금은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서 살고 있다.
압둘라는 “쿠르디가 숨졌을 때 전 세계가 난민을 돕겠다고 나섰다”면서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그런 움직임이 다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지중해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죽고 있고, 위험한 불법 난민선도 계속 성행 중”이라고 지적했다. 또 “지금은 난민 문제와 관련해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으려 한다”고 꼬집었다. 압둘라는 그럼에도 “전 세계 지도자들이 하루빨리 시리아 내전을 중지시켜 달라”고 호소했다. 그래야 난민들이 고국에 돌아와 정상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압둘라의 슬픔은 1년이 지났지만 점점 더해지고 있다. 그는 “구명조끼나 배 모양만 봐도 그날 밤 아이들이 죽어가던 순간이 떠올라 견딜 수 없다”고 토로했다. 또 “아직도 매일 숨진 가족들 생각만 한다”며 “사망 1주기가 되니까 더욱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특히 “오늘 갑자기 아이들이 돌아와 함께 지내고 또 옆에서 잠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고 울먹였다. 그는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왜 아직 살아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의 누이에 따르면 압둘라의 심리 상태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아이들이 갖고 놀던 인형을 늘 곁에 두고 지낸다고 한다.
압둘라의 지적대로 난민 문제는 1년이 지난 지금 훨씬 더 나빠졌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8월 말 기준으로 올해 지중해에서 숨진 난민이 3168명이다. 6월 말 기준으로는 2901명이 숨졌으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 더 많은 수치다.
유럽은 어렵게 도착하는 난민을 내쫓는 데 혈안이 돼 있다. 동유럽 국가들의 국경 폐쇄로 그리스에서 현재 발이 묶인 난민만 6만명이다. 유럽연합(EU)은 터키에 돈을 줘 난민의 유럽행을 막아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하지만 최근 쿠데타 이후 터키에 머물던 난민들의 지중해를 통한 유럽행이 다시 늘고 있다. ‘난민의 엄마’ 역할을 해온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우호적 난민 정책에 대한 내부 비판으로 지지율이 5년래 최저치인 45%까지 떨어졌다고 독일 ARD방송이 보도했다.
영국 신문 가디언은 “쿠르디가 숨졌을 때 그렇게 넘쳐났던 난민에 대한 동정심이 1년 만에 사라졌다”고 꼬집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넘쳐나던 동정심, 1년 만에 사라졌다”… 에일란 쿠르디 사망 1주년
입력 2016-09-02 1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