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부산에는 비가 내렸다. 주변의 고층 아파트들을 지나서 도착한 곳에는 다이아몬드 모양의 은회색 철망으로 뒤덮인 건축물이 나타났다. ‘F 1963’. 입구에 걸린 간판은 이 곳이 부산 최대 기업 고려제강이 1963년 수영구에 세운 1호 공장이라는 걸 알려준다. 오래된 공장이 미래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3일 개막한 부산비엔날레가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니 오른쪽과 왼쪽으로 실내를 미음(ㅁ)자로 둘러싸듯 전시장이 이어진다. 지붕의 철골 구조물, 시멘트벽 등이 거친 인공미를 뿜어내는 공간에 현대미술 작품들이 진열돼 있다.
가장 높은 천장에 빨간 방수포가 빙빙 돌아가며 커다란 꽃 모양을 만드는 게 스펙터클하다. 네덜란드 작가 조로 파이글의 작품 ‘양귀비’다. 한국의 윤필남 작가는 천장의 강철 빔 사이로 천으로 꼰 선을 어지럽게 늘어뜨린 작품을 선보였다. 그 사이로 보이는 키보드, 휴대전화 케이스 등이 정보 과잉 사회를 비웃는 듯하다.
윤재갑(중국 하우아트뮤지엄 관장) 전시감독은 ‘혼혈하는 지구 다중지성의 공론장’이라는 주제 하에 이곳에서 중국의 팡리쥔, 프랑스의 오를랑 등 23개국 56명(팀) 168점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비엔날레의 또 다른 전시장으로 쓰이며 ‘한중일 아방가르드 미술’을 선보이고 있는 부산시립미술관의 전형적인 화이트 큐브 전시와는 사뭇 다른 매력을 풍긴다.
부산 수영공장에서 출발한 고려제강은 양산, 창원 등 국내뿐 아니라 말레이시아, 헝가리, 베트남 등 전 세계 27곳에 공장을 거느린 글로벌기업이 됐다. 크레인, 엘리베이터, 교량, 타이어 등에 쓰이는 와이어(쇠줄)를 만드는 이 회사는 벨기에 베카르트와 특수선재(線材) 분야 세계 1, 2위를 다투는 수출기업이다.
고려제강의 모태인 수영공장은 인근이 초고층 아파트촌으로 개발되면서 2008년 가동 중단됐다. 수영강 너머가 바로 부산의 강남인 해운대구 ‘센텀시티’다. 수영공장 자리는 대지 3500평 금싸라기 땅이다. 주변에선 당연히 부동산 개발을 권유했다. 그러나 오너 2세인 홍영철 회장은 기업의 모태인 수영공장을 오롯이 보존하고 싶었고 이왕이면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싶어했다. 그러던 차에 윤 감독이 지난해 12월 전시 장소로 제안을 해왔다. 앞서 2014부산비엔날레 때 공장의 일부 공간을 전시장으로 사용해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경험이 있었다.
건축가 조병수씨가 설계를 맡아 폐공장을 근사한 문화공간으로 바꿔놓았다. 전체적으로는 미음(ㅁ)자가 세겹으로 에워싸인 구조다. 가장 안쪽의 테니스코트 크기 중앙마당은 지붕 없이 그대로 하늘이 보인다. 양 끝으로 계단식 좌석과 무대를 마련해 공연장으로 쓰인다. 두 번째 ㅁ공간에는 커피전문점, 도서관, 교육실, 체코맥주 제조시설 등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ㅁ’자가 전시공간이다.
전시공간을 둘러보던 홍 회장은 “어쩌다 보니 좋은 전시장이 됐다.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에서도 용도 폐기된 산업시설을 문화공간으로 재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규모가 작아 창작 지원공간인 레지던시로 활용된다.
영국의 테이트모던은 발전소를 개조한 전시공간으로 세계적인 명소다. 이안기 고려제강 홍보팀장은 “부산에서는 이곳이 테이트모던 같은 명소가 돼 문화의 힘으로 지역 경제를 살리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부산=글·사진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쇠줄 만들던 부산의 ‘공장 1호’ 예술을 품다
입력 2016-09-04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