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령 리안갤러리 대표 “취미로 시작… 더 좋은 그림 나와 안 살 수 없었어요”

입력 2016-09-04 20:24
대구에서 서울로 진출한 리안갤러리 안혜령 대표. 서울관 개관 3주년을 맞은 그는 지난달 31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좋은 컬렉션을 갖추려면 좋은 갤러리를 만나는 게 중요하다. 컬렉터들에게 그런 갤러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구성찬 기자

“취미 삼아 시작했는데, 그게 나이 들어 직업까지 만들어줬어요. 제가 화랑을 차리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나긋한 사투리 억양이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는 힘이 있다. 소장품만 100억원어치가 넘는 대구 ‘큰 손 컬렉터’ 출신 안혜령(58) 리안갤러리 대표. 10년 전 대구에서 출발한 이 갤러리가 서울 진출 3년을 맞았다. 리안은 홍콩바젤아트페어에 나가는 국내 10곳 안 되는 화랑 중 하나다. 심사가 깐깐하기로 소문난 홍콩바젤아트페어는 페어 참가 자체가 성공의 증명서다.

안 대표를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리안갤러리에서 만났다. 그가 앉은 자리 너머로 오스트리아 작가 프란츠 웨스트의 작품이 보인다. 2009년 20만 달러에 구입한 이 작품은 지금은 80만 달러를 호가한다.

미대에 가고 싶었던 안 대표는 부모님의 반대로 수학과에 진학했다. 결혼을 하고서야 그림을 그리겠다고 이젤을 폈다. 집안 곳곳엔 유화 물감이 덕지덕지 묻었다. 퇴근 후 TV 보는 남편 옆에서 신혼의 아내는 그림을 그렸다.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차라리 그림을 사소. 돈은 내가 줄 테니.”

그 한 마디가 수십 년 후 이런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줄은 누구도 몰랐다. 1984년, 스물여섯 새댁의 생애 첫 컬렉션은 대개 그러하듯 판화였다.

“그 때 같이 그림을 사러 다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거실에 걸어둘 그림 몇 점 사더니 그만 두더라고요. 저는 계속 샀어요. 더 좋은 그림이 나오는데 어떻게 안 살 수 있겠어요.”

1990년대 들어 컬렉터로서 한 차례 변신을 겪었다. 김창열, 박서보, 이우환, 정상화…. 중견 작가들의 작품을 사기 시작한 것이다. 구입 가격은 작품 당 수백만원에서 수천만, 수억원으로 뛰었다. 마침내 한국 작가론 최고 몸값인 김환기의 작품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조선 후기 최고의 컬렉터로 불리는 석농 김광국. 의관인 그의 수집품을 모은 화첩 ‘석농화원’에 발문을 써준 문인 유한준은 그림은 사랑하면 결국 모으게 된다고 했다. 안 대표에게도 그림 사랑의 종착지는 소장이었다.

안 대표의 미술품 컬렉션은 한의사인 남편의 지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내의 안목과 사랑을 믿어준 남편. 갤러리 이름 리안도 자신의 성 앞에 남편의 성을 붙여 작명했다. 그렇게 고마움을 담았다.

미술시장의 국제화와 더불어 그도 외국작가에게 눈을 돌렸다. ‘땡땡이 호박 조각’으로 유명한 구사마 야요이, ‘LOVE’ 조각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공공미술 작가인 로버트 인디애나, 미국 팝 아트 작가 앤디 워홀의 작품이 그의 수집품이 됐다.

이렇게 좋은 그림을 모을 수 있었던 건 좋은 갤러리를 만난 덕분이라고 한다. 대구의 인공갤러리와 그 뒤를 이은 시공갤러리다. 특히 인공갤러리 황현욱 대표는 단색화 작가들의 개인전을 선도적으로 열었고, 도널드 저드 등 현대미술사에 획을 그은 작가들의 개인전을 잇달아 개최하는 등 당시 한국 화랑계에선 독보적 존재였다.

컬렉터였던 그는 왜 화랑까지 차리게 됐을까. “시공갤러리 이태 대표가 돌아가신 후 인수자가 2년째 나타나지 않았어요. 한국 미술계를 위해선 그렇게 사라져서는 안 되는 갤러리였지요.”

리안갤러리는 2007년 개관전으로 앤디 워홀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알렉스 카츠의 첫 국내 개인전(2007), 데미안 허스트(2009), 짐 다인(2011), 데이비드 살리(2013), 키키 스미스(2014), 프랭크 스텔라(2015)의 개인전을 선보이며 단박에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우리 한국 작가만 ‘소복이’(많이) 전시하면 어떤 외국 갤러리가 한국을 찾겠습니까. 우리 갤러리가 우선 눈에 띄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쌓은 국제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이제는 국내 작가를 해외에 알리고자 한다. 지난 4월에는 전속 작가 4명이 러시아에서 전시를 열었다.

8일부터는 서울관 개관 3주년 기념전으로 하태범 개인전 ‘화이트’가 열린다. 테러, 쓰나미 등 사건·사고 현장을 무감각하게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를 흰색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내는 신작을 선보인다.

글=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사진=구성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