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은 같이 길을 가는 것을 말합니다. 동행은 서로를 하나 되게 합니다. 특히 여행에서의 동행은 함께 보고 먹고 자고 말함으로 서로를 깊이 알아갈 수 있습니다. 인생의 동행은 서로 닮아가는 특징도 있습니다. 40∼50년 인생의 동행자인 부부는 말투도, 걷는 모양새도 닮아갑니다. 이것이 동행의 아름다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반이라는 시간동안 주님과 동행했습니다. 함께 걷고 먹고 자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최측근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떤 제자들에게는 3년 반이 짧아서일까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제자들의 갈 길을 상실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말씀하셨지만 그 후에 다시 살아나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마 26:32)
그런데 글로바와 다른 한 사람이 가던 곳은 갈릴리가 아닌 엠마오라는 마을이었습니다. 그것은 약속을 알기는 했지만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눅 24:23) 이들은 여인들이 전해 준 부활의 소식과 다른 제자들이 전해 준 부활의 소식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부활하신 주님께서 동행하심에도 주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많은 설교와 성경공부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의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에도 나는 그 주님을 몰라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나의 동행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동행에는 3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그저 따라가는 동행입니다. 주님과의 동행이 나의 삶의 변화보다는 마음의 평안과 기쁨이 있고 기도하면 된다고 하니 동행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내가 이끄는 동행입니다. 신앙의 주도권이 내가 되어서 내 맘대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주변의 어떠한 인도보다는 내 방식대로 믿음생활을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기보다는 편한식대로의 종교생활인 것이지요.
셋째는 주님께 이끌리는 동행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합니다. 설교를 통한 삶의 적용으로 생활이 변화되어갑니다. 기도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의 만남으로 나아갑니다.
마치 친한 친구를 만날 때 그 친구를 통해 무엇을 얻기 위해 만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종속적인 관계가 됩니다. 그러나 친구는 함께하는 것이 좋아서 만나는 것입니다. 친구의 모습 속에 내가 있고 내 모습 속에 친구가 있습니다.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 15:14∼15)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이끌림을 받은 이후, 다시금 돌이켜 주님께 이끌리는 동행을 시작합니다. 내 맘대로의 신앙으로 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끄시는 동행으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박재영 목사 (춘천 사도행전교회)
◇약력=△목원대 신대원 △2015년 춘천 사도행전교회 부임
[오늘의 설교] 어떠한 동행이십니까
입력 2016-09-02 2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