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4만5000원 → 3만원대… ‘밀수 담배’ 암거래 성행

입력 2016-09-02 04:36 수정 2016-09-02 09:25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수입물품 판매 잡화점을 하는 강모(56)씨는 지난해 초 주변 상인들로부터 담배를 싸게 살 방법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담뱃값이 한 갑에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오른 뒤 가게를 찾는 손님마다 “담배를 싸게 살 수 없느냐”고 묻던 참이었다. 강씨는 수소문 끝에 그해 7월 담배 밀수업자 조모(46)씨를 만났다.

조씨는 베트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로 수출된 담배를 국내로 몰래 들여온다고 했다. 4만5000원인 에쎄라이트 한 보루(10갑)를 강씨에게 2만2000원에 팔았다. 강씨는 올해 5월까지 12차례에 걸쳐 약 1억8000만원을 들여 8200보루를 사들였다. 서울 남부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송규종)는 밀수 담배를 사고 판 혐의(관세법 위반)로 강씨를 지난 18일 구속 기소했다고 1일 밝혔다. 조씨는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지난해 담뱃값 인상 이후 담배 밀수가 늘고 있다. 수출용 담배와 내수용 담배의 가격 차이가 커지면서 밀수로 누리는 차익도 덩달아 커졌기 때문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수출용 담배를 다른 화물로 속여 국내로 밀수하다 세관에 적발된 건수는 2014년 6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담뱃값이 인상된 지난해 24건으로 늘었고, 올해는 상반기에만 21건에 이른다. 밀수액은 더 늘었다. 2014년 3억7000만원에서 지난해 26억1100만원, 올 상반기 41억8900만까지 뛰었다.

조직적으로 담배를 밀수하는 일당은 주로 동남아 국가로 수출된 담배를 국내로 들여온다. 베트남 등에서 에쎄라이트 한 보루를 1만30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국내 가격의 3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다. 현지에서 사들인 담배는 일반 화물로 위장해 주로 선박을 통해 우리나라로 온다. 나무의자나 토시 등 수입물품 속에 숨겨 들여오는 수법이다. 국내에선 화물을 받는 사람, 소매점으로 전달하는 사람 등의 손을 거친다. 이렇게 7∼10단계에 이르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남대문시장이나 부산 국제시장에서 보루당 3만원대에 판매된다.

담배 밀수는 마약 밀수처럼 점조직 형태로 운영된다. 철저하게 역할을 분담한다. 총괄하는 사람이 없이 각자 수출담배를 사서 보내고 받고 되파는 식이다. 검찰 관계자는 “적발된 밀수범의 자백이 없으면 ‘유통망 일망타진’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강씨와 조씨의 경우도 이들에게 수출담배를 팔거나 밀수한 업자 등을 더 찾지 못해 두 명만 기소했다.

담뱃값이 오르자 가짜 담배를 들여오는 경우도 있다. 중국에서 가짜 에쎄 담배 5만 보루를 만들어 밀수하려던 박모(67)씨 등 3명이 지난해 11월 부산세관에서 적발되기도 했다.

관세청은 밀수가 급증하자 지난해 말에 “담배 제조사의 협조를 얻어 수출용 담배의 흡연 경고 문구 크기와 면적을 확대 표시하겠다”고 밝혔다. 밀수된 수출용 담배와 내수용 담배를 구분하기 힘들어 소비자들이 범죄라는 생각 없이 구입하고, 밀수업자도 이를 악용하기 때문이다. 관세청은 영어로 쓰인 경고 문구를 크게 표시하면 내수용 담배와 수출용 담배가 확연하게 구별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아직까지 홍콩 수출 담배를 제외하고 경고 문구의 변화는 없다. KT&G 관계자는 “오는 12월 국내에도 담뱃갑 ‘경고 그림’이 도입되기 때문에 앞으로 내수 제품과 수출 제품의 식별이 훨씬 용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