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도 사라졌고, 허니문도 끝났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얘기다. 이 대표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파문의 피해자 중 한 명이다.
그는 8·9전당대회에서 승리하며 보수 정당의 첫 호남 출신 대표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지난달 11일 박근혜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했을 때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모신 이후 (대통령이) 이렇게 많이 웃으신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과 25분 동안 독대를 하기도 했다. 비주류였던 김무성 전 대표가 박 대통령과 딱 5분간 독대했던 사실과 비교됐다.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비주류는 숨을 죽였다.
하지만 그의 꿈같은 날은 일주일을 가지 못했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지난달 18일 우 수석의 비리 의혹에 대해 검찰 수사를 의뢰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청와대가 이 감찰관에 대해 “국기 문란” 등 강경한 표현을 사용하며 싸움을 확대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우 수석의 사퇴를 요구했다. 비주류 의원들도 동참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친박(친박근혜)은 ‘우병우 지키기’에 나섰다. 이 대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그 이후 이 대표는 ‘우병우’의 ‘우’자만 꺼내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그는 당시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기자들은 우병우 거취에만 관심이 있지만, 나는 국민과 민생이 더 중요하다”고 역정을 냈다.
그는 실제로 민생 행보에 나섰다. 경기도 수원 전통시장을 방문했고, 소방서와 경찰서를 찾기도 했다. 또 어민과 농민을 만났으며 중소기업인과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민생 드라이브는 관심을 끌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을 토로한 적도 있다. 이 대표는 “벼가 익고, 과일이 익는 것은 해, 구름, 비만 있어서 되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바람도 작용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병우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욕을 먹고 있지만 나도 드러나지 않게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게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일 것이다. 말 잘하기로 소문 난 이 대표가 은유법을 구사한 것은 그가 얼마나 답답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이 대표는 오는 5일 정기국회 대표 연설에 나선다. ‘근본 없는 놈’이라는 비웃음을 참으며 여당 대표 자리까지 오른 그로서는 매우 영광스러운 기회일 수 있다. 하지만 연설 내용보다도 그가 우 수석 문제를 거론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게 현실이다. 그는 피할 수 없는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이 대표는 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연설 내용은 민생과 안보가 될 것”이라고 짧게 말했다. 우 수석 문제를 거론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길게 침묵했다. 그러고는 “내가 언론에 기사 한 줄을 내려고 말하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또 “지켜봐 달라”고도 했다.
현재로선 이 대표가 우 수석 문제를 대표연설에서 거론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이 대표가 어떤 연설을 할지에 따라 그의 평가도 달라질 것이다.
글=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
[정치 인人사이드] 이정현 대표, ‘우병우 파문’ 피해자 중 한 명… 5일 대표연설서 禹 언급할까
입력 2016-09-02 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