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 돈도 안 빌린다

입력 2016-09-01 17:56 수정 2016-09-01 21:26

삼성·현대자동차·SK·LG·롯데 5대 대기업이 최근 1년간 신한·KB·하나 등 3대 은행에서 신용공여액을 1조원 안팎씩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불황에 투자를 미루는 것을 넘어 빚을 갚는 데 주력한 셈이다. 특히 현대중공업 계열사의 신용공여액은 이들 3대 지주에서 1년 만에 5조원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1일 신한·KB·하나 등 3대 금융지주의 반기보고서를 보면 상반기 상위 10대 주채무계열 기업집단에 대한 신용공여액 가운데 삼성은 총 12조1276억원을 기록해 부동의 1위를 차지했으나 1년 전과 비교하면 1조9274억원 줄어들었다. 신한금융에서 6923억원, KB금융에서 5230억원, 하나금융에서 7121억원을 각각 줄였다.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신한금융에서 9350억원, KB금융에서 3430억원 등의 신용공여액이 줄었다.

신용공여는 원화 대출을 포함해 외화 대출, 지급보증, 유가증권 등이 모두 포함된 넓은 의미의 빚을 의미한다. SK그룹도 1년 새 하나금융에서 9335억원의 빚을 줄였다.

재계 1∼5위 그룹들의 신용공여액이 줄어든 데 대해 신한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일부러 줄이려 한 건 없다”며 “수출 부진으로 외환 자금 수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삼성과 현대차의 수출 물량이 예년 같지 않아 외화결제 대금이 줄었고, 불경기에 투자가 유보되고 현금 보유가 늘며 부채를 갚는 쪽으로 경영 방침이 정해진 여파도 영향을 미쳤다.

구조조정 중인 조선업 대표주자 현대중공업은 은행들이 산업별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여신을 삭감했다. 1년 만에 하나금융에서 1조9477억원, 신한금융 1조5004억원, KB금융 1조2840억원씩 신용공여액을 줄였다. 1년 새 3대 지주에서만 4조7321억원을 거둬들였다. 포스코 역시 KB금융에서 4740억원의 여신을 줄였고, 나머지 금융지주에선 상위 10대 리스트에서 탈락할 정도가 됐다.

한화그룹이 그나마 금융권에선 1년 새 여신을 늘려온 것으로 파악됐다. 한화는 KB금융에서 1조3100억원의 신용공여액을 기록해 지난해보다 3200억원 증가했다. 신한금융 쪽에서도 5016억원 늘었다. 한화 관계자는 “삼성그룹과의 방위산업 부분 인수·합병(M&A), 한화 큐셀의 태양광 준공 등으로 자금 수요가 있었다”며 “우리가 확장적 경영을 했다기보다 다른 그룹들이 불경기에 유보적 경영을 한 탓”이라고 설명했다.

하나금융그룹은 외환은행 합병으로 인한 특수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나금융지주 관계자는 “양행 합병으로 대기업 비중이 다른 곳보다 더 높아져 중소기업 소호대출 가계대출을 늘리는 등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