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평화상에 민주콩고 의사 무퀘게 박사, 내전 속 성폭행 피해 여성 5만명 치료

입력 2016-09-02 00:03

17년 전인 1999년 프랑스에서 의학 교육을 받은 드니 무퀘게(61·사진) 박사는 조국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에 ‘판지병원’을 설립했다. 내전으로 임산부 사망자가 급증하자 산부인과 진료를 제공해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판지병원의 첫 환자는 산모가 아니라 반군에 성폭행을 당해 신체가 처참히 훼손된 여성이었다. 내전으로 성폭행 피해를 입는 여성이 급증하자 무퀘게 박사와 동료들은 모든 자원을 동원해 성폭행 피해자를 돕기로 했다.

1999년 설립 후 지난해까지 판지병원을 다녀간 성폭행 피해 여성은 5만여명에 달한다. 무퀘게 박사가 하루에 받는 환자는 20여명으로 절반 정도가 성폭행 피해자다. 병실 450개 중 절반이 넘는 250개를 성폭행 피해 환자에게 우선 배정하고 있다. 성폭행 피해 여성의 고통은 신체에 그치지 않는다. 퇴원자 중 절반이 내전으로 고향이 파괴되거나 가족이 모두 숨져 돌아갈 곳이 없다. 다행히 남은 가족이 있더라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강간을 당했다’는 오명 때문에 가족이나 남편이 집에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을 돕고자 판지병원은 ‘도르가의 작은 집’을 마련했다. 돌아갈 곳 없는 퇴원자들에게 숙식과 재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이다. 의료 상담과 직업 상담, 글쓰기, 읽기 등 기초교육은 물론 자립을 위해 소액대출도 해준다. 수용 인원은 180명으로 평균 3개월 정도 이곳에 머문다고 한다.

목숨을 위협받는 일도 있었다. 2012년 10월 무퀘게 박사가 자택에서 무장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그해 9월 유엔 연설에서 반군의 만행을 강력히 비난한 게 화근이었다. 그의 두 딸은 인질로 잡혔다 간신히 풀려났지만 경호원 한 명이 총상을 입고 숨졌다.

무퀘게 박사는 테러와 암살 위협에 결국 가족과 함께 유럽으로 떠났다. 하지만 ‘병원에 환자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 이듬해 1월 고국으로 돌아왔다. 병원 환자들은 파인애플과 양파를 팔아 항공비에 보탰고 여성단체들은 경호그룹을 조직해 그를 곁에서 지키기로 했다. 무퀘게 박사가 돌아오던 날 환영 인파가 도로변 30여㎞를 메웠다고 한다.

서울평화상 심사위원회는 이런 공로를 인정해 무퀘게 박사를 제13회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1일 밝혔다. 권이혁 서울평화상 심사위원장은 “여성과 아동의 인권 신장은 물론 인류복지 증진에 크게 기여했을 뿐 아니라 DR콩고 내전 종식을 위해 국제사회의 여론을 환기하고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는 등 진정한 용기를 보여줬다”고 밝혔다.

시상식은 다음 달 6일 서울에서 개최되며 상장과 상패, 상금 20만 달러(약 2억2400만원)가 수여된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