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 분배로 경제 파탄… ‘핑크타이드’ 휘청

입력 2016-09-01 20:06 수정 2016-09-02 19:05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의 탄핵은 ‘핑크타이드(Pink tide·분홍 물결)’로 불렸던 남미 사회주의 바람이 더욱 확연히 몰락 중임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20년간 남미를 주름잡은 핑크타이드는 좌파 정치인들의 무분별한 재분배 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유가·원자재가 급락으로 인한 경제 충격을 넘지 못하고 결국 쫓기듯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남미에서는 1998년 우고 차베스가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칠레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볼리비아를 비롯해 2009년까지 9개국에서 좌파 정권이 차례로 들어섰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재분배 정책을 앞다퉈 도입했고, 또 미국·자본주의·재벌을 ‘사회주의의 3대 적(敵)’으로 규정했다. 2000년대 국제 상품가격 상승으로 호황을 누린 남미는 저소득층 보조금 지급, 최저임금 인상, 저렴한 생활필수품 공급 등 인기성 정책으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최근까지도 석유 1ℓ가 1센트에 불과했을 정도다. 이런 정책으로 차베스와 브라질의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등은 거의 ‘개인숭배’에 이를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과도한 재분배 정책은 국제 상품가격 하락과 함께 국가 재정을 고갈시켰다. 또 우파나 기업인들과도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는 등 분열적으로 국정을 이끌었다. 아울러 미국, 서방사회와 불필요하게 대립각을 세워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기도 했다. 여기에다 호세프가 소속된 노동자당(PT) 소속 의원들이 대거 부패 혐의에 연루된 것을 비롯해 집권이 장기화되면서 좌파 정치인들의 자랑이었던 청렴한 이미지마저 사라졌다.

상황이 이렇자 남미 대중은 이들에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아르헨티나에서 중도우파인 마우리시오 마크리가 대통령에 당선됐고, 지난 2월 볼리비아에서는 모랄레스 대통령이 개헌에 실패해 4선 도전이 좌절됐다. 지난 6월 페루 대선에서도 중도우파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가 승리했고 이번에 브라질에서도 호세프가 물러나면서 중도우파 미셰우 테메르가 1일(현지시간) 대통령에 취임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좌파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추진되고 있다.

남미 각국의 정권 교체에 대해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 방송은 “아르헨티나 마크리, 페루의 쿠친스키 등이 모두 경제 전문가인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지인들이 성장 없는 무분별한 좌파의 분배정책 대신 새로운 경제정책을 원하고 있다는 의미다. 영국 BBC방송도 “호세프가 크게 잘못한 게 없는데도 탄핵이 이뤄진 것은 후임 테메르 대통령의 경제 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호세프 탄핵 뒤 볼리비아와 베네수엘라가 자국 대사를 브라질에서 소환하면서 ‘좌파 결속’에 나섰지만 좌파에 실망할 대로 실망한 국민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관측이 많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