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윤희상 <7> 재활치료 중 다시 노래 시작… 출연 요청 쇄도

입력 2016-09-01 20:57
윤희상 집사는 교통사고 후 사지마비 장애인이 됐지만 꾸준한 재활운동을 통해 스스로 휠체어를 밀 수 있게 됐다. 윤 집사 부부가 지난해 미국여행 중에 찍은 사진.

입원해있는 동안 많은 선·후배와 동료 가수, 지인들이 방문했다. 송해 선생님은 일주일에 3∼4번씩 오셔서 위로해주셨다. 치료비에 보태라며 위로금을 주신 나훈아·송대관 선배님, 그리고 동료 가수와 지인들께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강남성모병원에서 두 달을 보낸 나는 대책 없이 침대에 누워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 서울 국립재활원으로 옮겼다. 이곳에는 나처럼 불의의 사고로 장애우가 된 이들이 많았다. 그들과 대화하면서 중심 잡는 법, 휠체어를 스스로 미는 방법 등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후 일산병원을 거쳐 삼육재활원으로 옮겨졌다. 마침 병실 옆에 누구나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여기에서부터 죽기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 눈만 뜨면 운동을 했다. 스스로 휠체어를 밀어 자살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처음엔 중심 잡기도 힘들었지만 여러 가지 재활치료 운동에 참여하면서 조금씩 힘을 키웠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혼자서도 휠체어를 조금 밀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어느 날 기자들이 병원에 찾아와 인터뷰를 요청했다. 재활운동을 하는 장면이 방송을 탔다. 내가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가요 프로그램 등에서도 섭외가 들어왔다. 다시는 노래 할 수 없다는 의학적 진단을 받은 후여서 노래를 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나 리허설에 일단 참석하고 노래가 안 되면 돌아오자는 주위 사람들의 말에 출연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리허설에서 힘이 들긴 했지만 노래가 되는 것이 아닌가. 사고 전에 불렀던 음역대 그대로 말이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노래가 내 인생의 전부였는데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자 갑자기 죽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 사고난지 11개월 만인 2005년 9월 29일 삼육재활원에서 퇴원했다.

이후 방송사 출연 요청이 쇄도했다. 내가 무대에 오를 때면 대중으로부터 격려의 박수가 쏟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엉덩이 살점이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허벅지 살도 떨어져 변기에 붙어 있었다. 오른쪽으로 누우면 오른쪽 살이 떨어지고, 왼쪽으로 누우면 왼쪽 살이 떨어졌다. 엉덩이 살이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퇴원 이후 바쁘게 휠체어를 타고 공연하러 다닌 것이다. 병원에서 ‘욕창’ 판정을 받은 뒤 모든 것을 포기한 나는 사고 때보다 더 큰 절망에 빠졌다. 다시 죽고만 싶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시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욕창으로 모든 활동을 중단하자 아내가 생활비를 벌겠다고 나갔다가 다단계 업체에 사기를 당한 것이다. 그나마 몇 푼 있던 돈도 다 털렸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이었던 아내는 잠도 못자고 밥도 못 먹었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고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살하려던 내가 우울해하는 아내를 도리어 위로해주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결의에 찬 내 모습에 아내도 점차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큰소리를 쳤지만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의지할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던 끝에 아내 친구가 섬기는 교회를 찾았다. 나들이 가는 기분으로 서울 광명그리스도의교회 예배에 참석했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