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아들’ 이종범 代 이은 이정후, 부전자전 야구 스타일로 맹활약

입력 2016-09-02 00:04
한국 청소년야구대표팀 외야수 이정후가 30일 대만 타이중야구장에서 열린 제11회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필리핀과의 B조 예선 1경기를 앞두고 타격 연습을 하고 있다.
이종범(왼쪽)-이정후 부자가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앞에서 다정한 모습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이정후 제공
지난 28일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한국 청소년야구대표팀 1번타자 이정후(18·휘문고)는 출국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그의 곁엔 꽤나 낯익은 남자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젠 한 야구선수의 아버지가 된 이종범(46)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었다. 마치 도장이라도 찍어놓은 듯한 두 사람의 외모 덕분에 한눈에 봐도 부자지간임을 알 수 있었다. 이 해설위원은 이정후에게 “국가를 위해서 하는 일이니 잘하고 오렴. 다치지 말고….”라고 애정 섞인 말을 건넸다.

아버지를 보고 자란 탓일까. 이정후의 플레이는 외모만큼이나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휘문고의 1번타자로 활약하며 고교리그 통산타율 0.397를 기록했다. 정확한 타이밍에 빠른 발을 앞세운 주루 플레이는 ‘바람의 아들’로 불렸던 이 해설위원을 연상시킨다. 이 때문에 이정후는 ‘바람의 손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제11회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B조 예선 3차전 태국과의 경기를 앞둔 1일 오전. 한국 대표팀이 머물고 있는 대만 타이중의 숙소 근처에서 이정후를 만났다. 전날 도루를 시도했던 탓인지 무릎에 상처가 선명했다. 곧이어 이정후에게 ‘바람의 부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정후가 야구방망이를 잡은 건 어찌 보면 예정된 수순이었다. 이 해설위원은 현역시절 몸을 사리지 않는 주루 플레이와 정확한 타격능력으로 프로야구를 호령하던 당대 최고의 스타였다. 그의 집엔 온갖 야구용품이 즐비했고, 이정후의 눈엔 모든 게 신기해 보였다. 아버지의 배트 모자 글러브를 차례로 만져보며 자연스레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다.

사실 이 해설위원은 자신의 그늘에 가려 아들이 야구선수로 빛을 보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아들이 자만하거나 겉멋이 들까 봐 칭찬에도 인색했다. 야구 조언도 잘 하지 않았다. 이정후를 가르치는 지도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들이 스스로 실패를 경험하면서 성장하길 바랐다.

이정후는 이를 알고서 일찍 철이 들었다. “한때는 아버지의 그늘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이젠 그런 부담을 완전히 떨쳤어요. 아버지는 아버지고 저는 저에요” 그는 다부지게 말했다. 혹여나 아버지에게 피해가 갈까 봐 말썽을 부리지 않으려고 했단다. 튀는 행동을 스스로 조절하고 운동에 더 집중했다.

그러면서도 이정후는 이 해설위원을 ‘츤데레(무뚝뚝해 보이지만 속정이 깊은 사람) 아빠’라고 표현했다. 엄한 듯 보이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단다. 그는 “아버지랑 얘기도 많이 하고 허물없이 지내요. 고등학교 3학년에 진학하면서 손가락 부상을 당해 고민이 많았는데 아버지 위로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어요”라며 “맨날 혼낸다고 하시고서 막상 그렇지도 않아요. 어머니가 혼낼 때 옆에서 합세를 하시죠”라며 웃어 보였다.

야구선수 이정후가 바라보는 아버지 이종범은 어떤 선수였을까. 이정후는 “내야를 휘젓던 아버지의 주루플레이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야구를 잘하는 선수였습니다”라고 야구선수 이종범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정후는 지난달 22일 KBO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을 통해 넥센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게 됐다. 그는 “무엇보다도 인성이 된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아버지를 의식하지 않고 저만의 길을 걸을 거예요”라며 당찬 포부를 드러냈다.

타이중=글·사진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