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국정은 다르다. 달라도 많이 다르다. ‘선거의 여왕’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의 여왕’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유다. 선거는 다수결이다. 한 표라도 많은 사람이 이긴다. 지지층이 다수일 경우 우리 편만 결집시키면 된다. 하지만 국정은 다수결이 아니다. 다수에게 양보를 구하고 소수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다. 다수를 위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소수를 위한 보상책을 마련하고 최소한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게 순리다.
또 선거에서 상대방은 적이다. 다른 후보보다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흙탕물 싸움도 불사한다. 그러나 국정에서 상대방은 적이 아니다. 동의를 얻고 협조를 구해야 할 대상이다. 상대방이 귀를 닫고 있어도 설득하는 제스처라도 취해야 하는 게 국정이다. 마지막으로 선거에서는 승부가 가려진다. 하지만 국정은 승패가 아니다.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라 승자를 격려하고 패자를 위로해야 하는 것이다. 공동체 유지의 기본원리다.
선거에서는 박 대통령의 ‘원칙과 신뢰’가 큰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국정에서는 ‘고집과 불통’으로 비쳐진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문제와 관련해 청와대가 내놓은 입장을 보면 아직도 대결적 사고를 버리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청와대 주장을 정리하면 대략 이렇다. “청와대 흔들기이며, 식물정부(레임덕)를 조장하는 의도가 있으며, 의혹만으로 공직자를 자른다면 누가 대통령을 위해 일하겠느냐”는 논리다. 본질은 ‘밀리면 끝’이라는 절박감이다.
하지만 여론은 다르다. 우 수석 거취와 관련해 가장 최근에 진행된 여론조사는 리서치뷰가 지난달 27∼28일 실시한 것이다. 응답자의 66.7%는 “우 수석이 사퇴해야 한다”고 답했다. 새누리당 지지층에서도 사퇴 의견(48.8%)이 ‘직(職) 유지’(37.6%)보다 높았다. ‘선거의 여왕’ 박근혜 대표는 다수를 자기편으로 결집시키는 특별한 힘이 있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다수와 싸우고 있다. 또 자기 지지자들과도 싸우고 있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지금 필요한 건 청와대의 인식 변화다. 청와대 흔들기가 아니라 국민 신뢰를 잃은 우 수석을 지키니까 청와대 스스로 흔들리는 것이다. 식물정부를 조장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청와대는 의심할 수 있겠지만 강경 대응이 오히려 레임덕을 자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공무원들은 의혹에 쌓인 공직자를 지키는 대통령에 감사하기보다는 민심과 동떨어진 결정을 내리는 대통령을 무서워하는 법이다.
대통령은 이 싸움에서 이기고 싶은 의지가 강해 보인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박 대통령이 급소인 우 수석을 정리한다면 정국은 급변할 것이다. 청와대는 반대 세력이 또 다른 타깃을 겨냥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우 수석을 겨냥하던 상대방은 목표물을 잃고 당분간 허둥댈 수 있다. 지금 이불 속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은 대통령 반대 세력이다. 청와대 안에서는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과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 관련 의혹이 터져 나와 물타기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그런 역공에 면역이 생긴 지 이미 오래다.
박 대통령은 지난 8·15 경축사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강조했다. 2주 뒤면 추석이다. 하지만 추석 가족모임에서 자신감을 얘기하는 가족들은 없을 것이다. 대신 우병우 얘기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어른들은 대통령이 왜 우 수석을 놓지 못하는지를 놓고 저마다 들은 음모론을 내놓을 것이다. ‘밀리면 끝’이 아니라 민심과 따로 가니까 청와대가 밀리는 거다.
하윤해 정치부 차장 justice@kmib.co.kr
[세상만사-하윤해] 선거의 여왕, 국정의 여왕
입력 2016-09-01 18:57 수정 2016-09-01 2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