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은 바람을 좋아해요. 그래서 공기가 잘 통하고 바람이 잘 부는 곳에 심어야 해요.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왜요? 자연과학적 설명을 기대하면서 이유를 물었으나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나무들은 땅에 발이 묶여 있잖아요. 바람이 불 때만 그나마 몸을 움직일 수 있거든요.
10여 년을 살았던 경기도 어느 동네의 옛 이름은 미원(迷原)이었다. 그곳으로 막 이사 갔을 무렵, 정체를 알 수 없는 웅성거림에 놀라 잠을 깼다. 한참 동안 귀를 기울이다가 그것이 새들의 울음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해 뜨기 바로 직전, 또는 해가 지고 난 직후의 어스름 속에서 새들은 가장 시끄럽게 운다. 시골에 살면서 알게 된 그들의 습성이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지만, 새들은 보이지 않고 안개만 자욱했다.
높은 산자락 호수 바로 옆에 자리 잡은 동네라 아침마다 골짜기와 호수로부터 짙은 안개가 몰려왔다. 여름 한철을 제외하고는 거의 정오가 다 되어서야 안개가 걷히고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아침 산책은 한 발자국 앞이 보이지 않는 미로를 따라 끝없이 걷는 일이기도 했다. 걷다 보면 내가 왜 이 자리에 서 있는지, 이제까지 걸어온 길은 어디로 사라졌고 또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곳의 옛 이름이 미원이라는 것을 떠올렸고, 그건 혼미함의 근원이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안개 낀 숲 속에는 잣나무들이 묵언 중인 수도사들처럼 서 있었다. 나무들은 땅에 발이 묶였으니 걸어온 길도, 앞으로 걸어갈 길도 없다. 아니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나무들의 길은 시간의 길. 땅속의 시간에서부터 저 높은 곳의 시간에 이르기까지, 중력을 거슬러 치솟아 오르던 시간의 길이 있다.
바람이 불면 나무들은,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어라 하면서, 그들이 지켜본 시간의 켜에 대해 고요한 탄식과 허밍으로 말하기 시작할지도. 안개 낀 숲 속에서 걸음을 멈추고 나는 혼미함의 근원에서 비롯된 말을 들어보려 애썼다.
부희령(소설가), 그래픽=공희정 기자
[살며 사랑하며-부희령] 시골동네 迷原
입력 2016-09-01 1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