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을 새롭게 번역했다. 내가 쓴 책 ‘꺼지지 않는 불, 종교개혁가들’의 개정판을 내면서 부록으로 넣기 위해서였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의 요지는 그 누구도 돈을 받고 죄를 사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루터는 이 95개조 반박문을 쓸 때만 해도 종교개혁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교회법에 대한 교황의 권한도 인정했다. 그러나 교회법을 오용해 돈을 받고 죄를 사해 주는 행위는 참을 수 없었다. 당시 교황청은 돈을 받고 죄를 사해 주었다. 돈이 있는 사람은 죄를 면했다. 죽은 부모조차 죄를 면했다. 면죄부 판매가 그것이었다. 교회법을 빙자해 죽어가는 사람에게도 속죄의 대가를 요구했다. 돈 때문에 가장 공의로워야 할 교회법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루터는 반발했다. 돈 때문에 죄를 사해 주는 것이 말이 되는가. 교황이 과연 그런 권한을 가졌는가. 루터에 따르면, 죄 사함은 참된 회개와 하나님의 은총에 달린 것이다. 교황은 그것을 선포할 뿐 그에 대해 아무런 권한이 없다.
500년 전 루터가 교회법의 오용과 남용에 분노해 95개조 반박문을 교회 문에다 박았다. 그 때와 지금 한국은 다른가. 금품 수수 때문에 법조계의 신뢰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현직 고검장이 구속되고, 전직 부장판사 출신의 전도양양한 여변호사가 구속되었다. 또 다른 현직 부장판사가 오늘 긴급 체포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누구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할 판관들이 돈에 휘둘리다니, 법이 위태로울 지경이다.
뇌물을 받는 판관을 생각하니,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 제국의 캄비세스 왕 때의 일이 생각난다. 캄비세스황제 시절 판관 시삼네스는 뇌물을 받고 부패한 판결을 내렸다. 부당한 판결 소식을 들은 캄비세스는 판관 시삼네스의 가죽을 벗겨 죽이라는 형벌을 내렸다. 형벌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더 나아가 그 아들 오타네스에게 아버지의 벗긴 가죽위에 앉아 송사를 보라는 가혹한 명령을 내렸다. 캄비세스는 여러 가지 엽기적인 행위로 유명한 황제였다. 그러나 그는 유럽 재판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을 교훈을 남겼다. 그 교훈은 이렇다.“누군가 그대에게 악을 행하도록 충동한다면, 그의 운명을 기억하라. 그대 아버지의 운명을 내려다보고 그의 운명이 그대에게 닥치지 않도록 하라.”
이 교훈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벨기에 시립미술관에 걸려 있는 제라드 다비드가 그린 캄비세스 재판이라는 패널 형식의 그림이 있다. 그림은 판관 시삼네스의 체포 장면과 그의 가죽을 벗기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죽을 벗기는 묘사가 너무 적나라해 마치 해부학 그림 같을 정도다. 가죽을 벗기는 장면의 후경에는 브뤼헤 시청사‘정의의 회랑’에 아버지 시삼네스의 가죽으로 만든 의자에 앉은 판관 오타네스의 모습이 보인다. 아들 오타네스의 심정은 어땠을까. 오타네스는 아버지의 일을 교훈삼아 공정하게 일을 처리해 공적을 많이 쌓았다고 한다. 제라드 다비드의 이 그림은 원래 시청 시의회에 걸려 있었다. 이 그림은 종교개혁 직전이라 할 수 있는 시기에 그려졌다. 그런데 왜 이런 그림이 그려진 것일까. 이런 그림이 그려진 것은 그만큼 정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부정부패가 횡행했던 것은 아닐까. 당시 브뤼헤 시민들은 시청에 걸린 그 그림을 보면서 정의를 구현하는 재판, 부정부패에 대한 징벌을 염원했던 것만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미켈란젤로도 ‘최후의 심판’ 안에 이와 비슷한 그림을 그렸다. 성 바르톨로메우스의 초상이었다. 성 바르톨로메우스는 가죽을 벗겨 죽는 순교를 당했다. 이 가죽만 남은 성 바르톨로메우스의 모습에다 미켈란젤로는 자기의 초상화를 그려 넣었다. 왜 그렇게 그렸을까. 심판 날에 우리의 영혼을 제외한다면, 결국 남는 것은 이 껍질뿐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미켈란젤로는 증언하고 있다.
‘최후의 심판’을 그리면서 미켈란젤로는 등장하는 인물들을 모두 나체로 그렸다. 교황청에서 나체를 가리라고 해도 가리지 않았다.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심판 날에 우리가 신 앞에 서게 된다면, 어떤 옷을 입는다 해도 우리의 모습과 행동이 가려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500년 전 루터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과연 우리의 죄를 돈으로 사할 수 있을까? 이동희<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이동희의 종교개혁 500년] 돈으로 죄를 사할 수 없다
입력 2016-09-02 1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