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종의 환자 샤우팅] 누구 위한 ‘신약 약가우대’ 인가

입력 2016-09-04 19:38

정부가 추진하는 ‘국내 개발신약 약가우대 정책’에 다국적 제약사가 ‘무임승차’를 하게됐다. 보건복지부가 3월2일 임상적 유용성이 기존 약제와 유사한 국내 개발 신약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대체약제의 최고가까지 인정해 주는 ‘국내 개발신약 약가우대’ 정책 추진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다국적 제약사의 무임승차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보건복지부는 ‘국내 개발신약 약가우대’ 요건으로 “①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허가를 받은 신약 또는 이에 준하는 신약. ②허가를 위한 임상시험을 국내에서 수행한 경우. ③최초 허가국 외 1개국 이상에서 허가 또는 임상시험 승인을 받은 경우 ④혁신형 제약기업 또는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이에 준하는 제약기업으로 인정한 기업이 개발한 경우”를 제시했다. 하지만 4가지 요건 모두를 다국적 제약사는 절대 충족할 수 없다. 그런데 7월7일 복지부는 제약사가 신약의 비용효과성을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대체약제 최고가의 10%를 가산하고, 비용효과성을 입증하면 혁신가치를 경제성 평가에 반영해 더 높은 약값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우대 정책’을 발표했다.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우대’ 요건은 지난 3월 발표한 ‘국내 개발신약 약가우대’ 요건보다 대폭 완화돼 다국적 제약사도 수혜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복지부가 ‘글로벌 혁신신약의 약가우대’ 요건으로 첫째, 국내에서 생산 또는 사회적 기여도(환자치료 지원사업, 기부금 등) 등을 고려해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인정한 경우로 완화했다.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허가받은 신약이 아니어도 제약사가 환자치료 지원사업을 하거나 기부금 등을 내는 방법으로 사회적 기여를 하면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허가받은 신약’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보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둘째, 해당 품목 허가를 위한 임상시험을 국내를 포함해 실시한 경우도 포함됐다. 셋째, 다국적 제약사가 충족하기 어려운 최초 허가국 외 1개국 이상에서 허가 또는 임상시험 승인을 받은 요건은 아예 삭제했다. 넷째, 국내 제약사와 외자사 간 공동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인정한 기업이 개발한 경우도 포함시켰다.

복지부가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우대’ 요건으로 제시한 3가지는 국내 제약사 뿐 아니라 다국적 제약사도 조금만 준비하면 충족할 수 있다. 그 결과 다국적 제약사도 최소 10% 이상의 약값을 더 받을 수 있게 됐다. 정부가 추진 중인 ‘국내 개발신약 약가우대 정책’에 다국적 제약사가 ‘무임승차’를 한 꼴이다. 혁신신약 약값이 최소 10% 이상 인상되면 다국적 제약사는 많은 이윤을 얻는다.

최근 항암제와 C형간염 치료제 등 혁신적 또는 획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신약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이러한 ‘혁신신약’은 개발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약값이 비싸다. 또 주로 다국적 제약사가 개발한다. 이러한 ‘혁신신약’ 개발에서 큰 변화는 국내 제약사들의 혁신신약 개발이다. 2001년 국내에서 출시된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은 세계 최초의 표적항암제로 5년 생존율은 95%가 넘는다. 올해 출시된 만성C형간염 치료제 ‘하보니’의 3개월 후 완치율도 95%를 넘는다. 이 정도 치료효과는 나와야 ‘혁신신약’으로 약가우대 혜택을 주는 것이다. 복지부가 제시한 효과가 조금 개선된 경우와 효과 개선은 없고 안전성·편의성 개선만 있는 경우 국내 제약사 뿐 아니라 다국적 제약사의 약값을 최소 10% 이상을 가산한다는 것은 과한 혜택이다.

정부는 올해 1월부터 업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건강보험 약가제도 개선 협의체’를 구성해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우대 정책’ 개선안을 마련했지만, 시민단체와 환자단체 등은 철저히 배제됐다. 향후 막대한 건강보험 재정 투입이 예상되는 이번 정책 추진 과정에 사회적 논의구조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하지 않고 보고만 한 것도 절차적 하자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시민단체·소비자단체·환자단체, 전문가 등과 사회적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 연합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