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군 이어 내각까지… 北 숙청 칼날 전방위

입력 2016-09-01 00:05

북한 내 ‘김정은 절대왕정’ 구축이 가속화하고 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최고 영도자의 눈 밖에 난 고위 간부들이 대거 숙청의 칼끝에 내몰리는 형국이다. 2011년 집권 이후 김정은식 ‘공포통치’가 당·군에 이어 내각까지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우리 정부가 31일 처형된 사실을 밝힌 김용진 내각부총리는 ‘반당반혁명분자’ ‘현대판 종파’로 낙인찍혀 총살당했다. 하지만 직접적인 발단은 지난 6월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불량한 자세’를 취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당 최고수위에 오른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대관식’에서 감히 똑바로 앉아 있지 않았다가 불경죄를 뒤집어썼다.

김 부총리 숙청은 지난해 4월 공개처형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정보 당국은 당시 군 서열 2위이던 현 부장이 반역죄로 고사총 세례를 받은 이유에 대해 “군 행사에서 졸고, 김 위원장에게 대꾸하는 등 불경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의 심기를 거스르면 누구든 가차 없이 제거될 수 있다는 공포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고위 간부들에 대한 처형과 공포통치는 최고지도자를 절대화하는 스탈린식 개인 절대독재 체제의 중요한 특징이며 김정은 정권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김정일 국방위원장 통치 시기에는 더 많은 간부들이 숙청됐다는 점을 들어 ‘매우 절제되고 선택적인 숙청’이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집권과 동시에 ‘주민에게 자애롭게, 간부에겐 엄혹하게’라는 통치 원칙을 확고히 해 왔다. 문자 그대로 ‘선군정치’를 세련되게 변용해 일반 주민의 지지를 얻는 동시에 간부들과 권력을 분점하지 않는 ‘절대왕정’식 체제 구축을 겨냥한 행보다. 이는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북한 내외에서 실세로 거론되는 인물들마다 최악의 경우 처형, 최소한 좌천·혁명화 등의 ‘길들이기’를 거의 예외 없이 겪고 있는 데서 확인된다.

혁명화 조치 후 복권된 것으로 확인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역시 김 위원장의 신임이 두터운 실세로 알려져 왔다. 4차 핵실험 이후 대남 도발을 주도하며 승승장구하던 김 부장이 지난달 주요 당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유가 최고 존엄의 심기를 거슬렀기 때문임이 뒤늦게 확인된 셈이다.

김 위원장의 고모부이자 집권 과정에서 후견인 역할을 하며 정권 2인자로 통했던 장성택 당시 국방위 부위원장이 2013년 말 처형된 것은 ‘2인자’ 자체를 용납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다. 뒤이어 2인자로 부각된 ‘빨치산 2세대’의 대표주자 최룡해 당 중앙위 부위원장 역시 혁명화와 좌천을 경험하고 복귀했다.

이처럼 사선을 넘나들고 돌아온 간부들은 김 위원장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을 내비칠 수밖에 없다. 특히 혁명화를 마치고 막 복귀한 김 부장은 충성경쟁의 최전선에 서야 하는 상황이기에 대남 도발 강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연이은 숙청은 불안한 경제 사정으로 인한 내부 불만, 최근 잇따른 고위급 외교관 및 해외파견 일꾼들의 탈북 등으로 인한 체제 동요를 차단하기 위한 본보기 차원이기도 하다. 탈북자 단체 NK지식인연대는 이날 북한실상 설명회를 열어 “북한이 태영호 주영 북한 공사 탈북 사건 이후 항일투사 2세 등에 대한 전면적인 검열에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북한 당국은 올해만 60여명의 주민을 공개처형하는 등 공포통치를 여론 잠재우기에 전방위로 활용하고 있다.

글=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