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70년대 경찰은 왜 가위·자를 들고 다녔나

입력 2016-09-01 21:50 수정 2016-09-02 19:33
유신정권 시절엔 머리와 치마 길이까지 규제했다. 창비 제공
1970년대엔 남학생들뿐만 아니라 여고생들도 교련복을 입고 훈련을 받았다. 창비 제공
1980년대 서울 목동 소형아파트 분양 접수처에 모인 인파. 창비 제공
한국현대사는 뜨거운 주제다. 직접 관련자들이나 후손들이 아직 생존해 있고, 평가가 여전히 진행 중이어서 지배적인 견해가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국절 논란이나 교과서 국정화 문제,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 등 근래의 첨예한 역사 논란이 모두 현대사에 집중돼 있다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럼에도 현대사를 공부하지 않을 수는 없다. 우리의 현재와 가장 가까운 역사이자 조부모·부모의 역사이고, 지금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력 세대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창비가 새로 선보인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시리즈는 한국현대사 교양서를 자임하면서 읽을만한 현대사 책이 부족한 독서시장의 빈틈을 채우고자 한다.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40년의 한국 역사를 10년 단위로 끊어 각각 한 권의 책으로, 전체 4권으로 구성했다.

이 시리즈는 한국현대사에 대한 두툼한 이야기를 제공한다는 점 외에도 생활문화사 중심으로 현대사를 서술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기존의 현대사 책들은 정치사나 경제사, 사회사가 중심이었다. 한국전쟁, 4·19, 5·16, 유신, 광주민주화운동, 민주화운동, 산업화, 경제개발 등을 키워드로 삼고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등 정치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현대사를 설명하는 게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한국현대 생활문화사’는 개인들의 일상생활과 당대의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그 시대를 조명한다. 여성, 학생, 영화, 텔레비전, 미니스커트, 스포츠, 치킨 등을 키워드로 삼아 현대사를 재구성한다. 기존에 이뤄진 생활문화에 대한 개별적 연구를 흡수해 현대사 40년을 생활문화사적 관점에서 꿰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풍속사적 역사 서술은 딱딱한 역사를 흥미롭게 읽어내는 방법이 될 뿐만 아니라 정치와 구조, 상황 등에 의해 역사가 지배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 그 속에서 개인들이 순응하고 저항하고 우회하고 일탈하는 과정을 통해 역사를 진행시키기도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예컨대,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에는 반공과 멸공, 북진통일의 구호만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전후의 혼란은 많은 가능성을 열어놓았고 사람들의 욕망이 거침없이 분출했다. 사람들은 댄스홀에 드나들었고, ‘자유부인’이 등장했고, 미국 문화가 빠르게 확산됐다.

“다양한 정치, 사회집단 및 개인들이 전쟁이 몰고 온 유동성 속에서 엄청난 욕망과 욕구들을 분출시키며, 새로운 희망과 방향을 찾아나서는 역동성을 1950년대의 한국사회는 또한 보여주었다. 이러한 역동성을 포착하지 못한다면 1960년에 벌어진 4·19혁명 같은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1960년대는 야간통행금지가 있었고 조국근대화의 깃발이 휘날렸다. 군부가 압도하는 사회였고, 학생 데모의 시대였다. 그러나 1960년대는 한편으로 영화의 시대였고, 재벌의 탄생기였으며, 지식인과 잡지문화의 시대이기도 했다. 1980년대도 흔히 민주화운동의 시대로 묘사되지만, 컬러텔레비전과 스포츠의 시대이기도 했다. 1981년 1월 컬러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됐고, 1982년 3월 프로야구가 개막했다. 그리고 88서울올림픽이 있었다.

시리즈 기획위원인 허은 교수(고려대 사학과)는 “기존의 거시구조적 역사 접근에서는 개인 주체들이 위축되거나 사라지지 않았나 하는 문제의식을 가졌다”면서 “정치 등 거시구조가 당시 개인들의 일상생활 영역에서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개인적 삶은 거시구조적 역사 전개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중들은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살펴보면서 한국현대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보고자 했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이번 시리즈에는 역사학자, 정치학자, 사회학자, 국문학자, 대중문화 연구자 등 32명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또 생활문화사를 중심에 두되, 맨 앞에 ‘크게 본 0000년대’를 배치해 그 시대를 큰 틀에서 개관할 수 있도록 했으며, 뒤에는 당시 북한의 생활문화사와 일본·중국의 상황을 수록해 비교해 볼 수 있게 했다. 기존의 생활문화사 연구에서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월남피난민, 전쟁미망인, 도시빈민, 여공 등의 이야기라든가, 1950년대 북한의 세계화 경험과 그 트라우마를 다룬 ‘북한 사람들의 지구화 경험’ 등 북한 관련 몇몇 글들이 특히 흥미롭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