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부부 관계 파국 직전에야 사랑 의미 깨닫다

입력 2016-09-01 21:48
한국인에게 유난히 뜨거운 사랑을 받는 영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알랭 드 보통(47)이 썼다. 게다가 21년만에 낸 장편소설이다. 타이틀의 무게감 때문이라도 손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그는 ‘인생학교’ 시리즈에서 보듯, 일과 사랑, 섹스, 시간 등에 관한 현대인의 고민에 대해 인문학적이면서 철학적인 글쓰기를 하며 일종의 멘토 역할을 하는 작가다. 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그런 인생학교의 연장에서 작가의 사랑학 개론, 결혼학 개론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책을 출간한 은행나무출판사는 이를 소설과 철학 에세이를 결합시킨 ‘보통 스타일’이라고 명명한다.

소설 무대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청년 건축가 라비의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는 이내 재혼해버렸다. 측량사 아가씨 커스틴도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떠났다. 각각 한쪽 부모의 부재 속에서 성장한 두 남녀는 건축 현장에서 만나 첫 눈에 반한다. 이어지는 첫 데이트, 첫 키스, 첫 섹스, 그리고 결혼과 연이어 얻은 남매….

플롯이 전개되는 중요한 고비마다 그 부분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해석이 굵은 고딕글씨로 삽입되어 있는 형식이 독특하다.

두 사람은 결혼하기까지는 큰 굴곡을 거치지 않았다. 그러나 둘이 겪어야 하는 전쟁은 이제부터다. 그래서 소설 제목이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다. 방점은 결혼 이후의 권태로운 일상에 찍혀있다. 기혼자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부부가 싸우는 일은 소소한데 있다. 이들도 창고형 가구매장 이케아에 갔다가 어떤 커피잔을 살 것인가를 두고 실랑이하고, 가사 분담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속내야 어떻건 뱉어낸 말투에 섭섭해 하고 …. 급기야 라비는 심포지엄에 갔다가 만난 여성과 외도를 하기에 이른다.

소설은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기 전, 부부가 심리치료사를 찾아 상담을 하면서 냉랭한 사이를 회복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부부가 결혼 생활 상담을 한다는 것은 한국에선 흔치 않는 일이다. 상담 결과 결혼 16년 차 라비는 이제사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낀다. 라비가 결혼에 대해 내린 결론은 작가가 설파하고자하는 ‘사랑학·결혼학 개론’의 핵심일 것이다. ‘영혼의 짝을 만났다는 낭만적 개념이야말로 결혼을 재난으로 이끈다’ ‘타인에게 완전히 이해되기를 단념하라’ ‘사랑을 받기보다는 베풀 준비가 되어야 한다’ ‘서로 잘 맞지 않는다고 인식하는 게 시작이다’ 등등. 그렇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기술인 것이다.

대개의 작가는 소설을 통해 문제 제기를 한다. 그의 소설은 선생의 가르침 같다. 그래서 낯설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