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교에 적용되는 교육과정은 국가 교육의 밑그림이다. 지난해 완성된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학교현장 적용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새 교육과정은 내년 3월 초등학교 1, 2학년 교실에서 처음 시작된다. 2018년에 초등 3, 4학년과 중·고교 1학년, 2019년에 초등 5, 6학년과 중·고교 2학년, 2020년에 모든 학년으로 차츰 확대된다. 이미 다른 학교에 앞서 새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방향으로 '실험적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도 있다. 이들 학교의 사례를 통해 학교현장에 예고된 변화를 2회에 걸쳐 들여다본다.
교실은 무질서하고 시끌벅적했다. 수업 시간이고 교사도 있지만 여기저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교실 밖 창문으로 엿본다면 교사와 학생이 쉬는 시간에 잡담하는 걸로 여길 만도 했다. 담당 교사는 “아이들이 스스로 ‘빈칸’을 채우는 중”이라며 웃었다.
30일 경기도 성남시 늘푸른중학교의 1학년 국어 수업에서 학생 20여명은 ‘주체적으로 감상하고 요약하기’ 단원을 배우고 있었다. 문학작품 등을 감상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다. 15년째 국어를 담당하고 있는 한혜영 교사는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 대신 동화를 패러디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재구성했다.
한 교사는 수업 도입부에 그림 한 장을 칠판에 붙였다. 창밖으로 푸른 바다가 펼쳐진 그림이었다. 아이들에게 그림의 제목을 붙여보도록 했다. “수평선이요.” “바깥 세계입니다.” “세상을 그린 캔버스.” “나의 평범한 하루.” 다양한 얘기가 나왔다. 아이들은 ‘나의 평범한 하루’라는 독특한 제목을 붙인 친구를 일으켜 세웠다. “만약에 저기(그림) 산다면 저 풍경이 평범할 것 같았어요”라는 대답에 고개를 끄떡이기도, 갸웃거리기도 했다. 한 교사는 “같은 작품을 봐도 시각은 제각각일 수 있어요. 우리가 지금 그걸 배우는 겁니다”라고 정리했다.
이어 TV 모니터에 ‘쿠키, 한입의 인생 수업’이란 동화가 띄워졌다. “서로 돕는다는 건 ‘내가 반죽을 저을게. 너는 초콜릿 조각을 넣을래?’, 참는다는 건 ‘쿠키가 다 익을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거야’”라는 내용으로 쿠키를 소재로 인내·겸손·공경·믿음 등 다양한 인생의 가치를 말해주는 동화였다. 동화를 감상하고 난 뒤 학생들은 책상을 붙여 4명씩 조를 짜고 동화를 패러디한 작품을 구상했다.
조별로 토론을 거쳐 ‘쿠키’ 대신 넣을 말을 정했다. ‘주체적으로 감상하고 요약하기’ 단원은 국어 수업 4∼5시간에 걸쳐 진행된다. 이날 수업은 세 번째 시간이었다. 쿠키를 대체할 말을 찾는 것에서부터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그룹 안에서 주도적인 아이가 있는가 하면 소극적인 아이도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토론을 거쳐 최적의 결과물을 찾아가는 방법을 몸에 익히고 있는 듯했다. 소극적인 친구의 말에도 귀를 기울였고, 친구의 아이디어가 좋으면 수긍할 줄도 알았다. ‘카메라로 본 인생수업’ ‘교복에 담긴 인생수업’ ‘게임 한 번으로 본 인생수업’ ‘축구를 하며 느낀 인생수업’ 등 다양한 작품이 탄생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떤 삽화를 쓰고 어떤 말을 넣을지 정하는 분주한 와중에 수업 시간을 끝내는 종이 울렸다.
한 교사는 이런 방식의 수업은 평소보다 3∼4배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교과서에 밑줄 긋고 시험 나올 부분을 요약해서 전달한다면 15년 차인 제가 따로 수업을 준비하고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문학의 가치를 지식 차원에서만 알게 하기보다 스스로 느끼고 생각해 보게 함으로써 마음에 와 닿는 수업으로 디자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학교의 노복순 교장은 ‘빈칸’ ‘여백’을 새로운 교육과정의 중요한 포인트라고 짚었다. 그는 “국어 수업처럼 (새 교육과정에서) 교사는 학생에게 빈칸이나 여백을 제공하고 스스로 채우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면서 “체육 시간에 공을 차며 접한 포물선 운동을 그다음 수학 시간에 배우며 느끼는 등 다양한 수업 혁명이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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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글·사진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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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9-01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