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건전성? 확장적 재정?… 특색 없는 나라살림
입력 2016-08-31 04:03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도 경기 활성화를 위한 확장적 재정정책 기조를 이어간다고 밝혔다. 국내 기업 구조조정 등에 따른 경기 영향이 내년에 더욱 심화될 수 있는 상황에서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그러나 예산안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제 추가된 사업은 많지 않다. 경기침체기 취약층을 보듬어야 하는 사회안전망 예산도 연금 지출 등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제자리다. 내년 대선 정국 속에서 정치권에 ‘복지 경쟁’이 벌어질 것에 대비해 소극적 예산 편성을 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순수 복지예산은 줄었다
보건·복지·노동에 배정된 예산은 총 130조원이다. 올해 예산보다 6조6000억원 늘어났다. 증가율로는 5.3%로 지방으로 이전되는 예산이 포함되는 일반·지방행정, 교육 부문 예산과 문화·체육·관광 부문 예산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다.
그런데 복지 지출 내용을 들여다보면 복지 예산 규모가 커진 것이 정부 선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정부가 이날 예산안과 함께 발표한 ‘2016∼202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정부의 의무지출 중 복지 분야 법정지출액은 내년 87조9000억원에 달한다. 올해 예산(83조3000억원)보다 4조6000억원가량 늘어난 것이다. 정부는 2020년까지 이 부문 지출이 매년 5.3%씩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인 인구가 빠르게 늘고 연금 수급자가 늘어남에 따라 기초연금(5.2%), 4대 공적연금(7.4%) 등 지출이 자동 증가하는 영향이다.
내년도 복지 예산 증가분에서 이 법정지출 증가분을 빼면 순수 증가액은 1조원 수준에 그친다. ‘복지 확대’ 착시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그나마도 일자리 예산 증가분 1조7000억원을 빼면 소득분배 효과를 내는 순수복지 예산은 오히려 감소했다는 분석이다.
매년 기초연금이나 맞춤형 복지사업 등을 내세웠던 지난 예산과 비교해도 눈에 띄는 사업은 없다. 정부 관계자는 “대표적인 복지 예산을 넣어야 하느냐는 고민은 있었지만 정권 마지막 해라는 부담도 있었다”며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두고 올해 말부터 내년까지 복지 공약들이 쏟아져 나올 텐데 내년 예산에 뭔가를 더 미리 반영하긴 무리가 되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나랏빚’ 비중은 사상 최고
이런 가운데 내년 예산은 총 규모 차원에서 사상 최대다. 이를 위해 국채 발행 규모가 늘어나면서 내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40%를 넘어선다. 수치로만 보면 확장적 재정 지출이다.
이렇다보니 내년 예산이 확장적 재정과 재정건전성 목표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재정건전성을 높이려면 지출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의무지출 비중은 앞으로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 지출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정책위의장은 “무색무취한 점증주의 예산”이라면서 “지출 예산 내역을 보면 지금까지 했던 정부 정책을 예산 규모 확대에 따라 그대로 확장한 것뿐인 예산”이라고 비판했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도 “재정건전성이 허락하는 선에서 확장적인 재정을 지속하겠다는 것이 내년 예산안의 기조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