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호(A매치 97경기 30골), 황선홍(103경기 50골), 최용수(69경기 27골), 이동국(103경기 33골), 박주영(68경기 24골)…. 한 시대를 풍미한 걸출한 스트라이커들이다. 이제 한국 축구 대표팀의 ‘겁 없는 막내’ 황희찬(20·잘츠부르크)이 그 계보를 이으려 한다. 무대는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1, 2차전(9월 1일 중국전·6일 시리아전)이다. 과연 황희찬이 한국의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을 자질을 보여 줄 수 있을까?
흔히 스트라이커는 ‘키가 큰 타깃맨’으로 통한다. 하지만 키가 작아도 스트라이커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선수들도 많다. 177㎝인 라다멜 팔카오(30·첼시)가 대표적이다. 공교롭게도 황희찬의 키 역시 177㎝이다. 그는 체구가 작지만 그라운드에 뿜어내는 카리스마는 누구보다 강렬하다.
황희찬은 포항의 유스팀인 포항제철중, 포항제철고를 거치면서 기량을 닦았다. 2013년엔 전국 고등리그를 평정하며 최우수선수상과 득점상을 차지했다. 덕분에 18세였던 2014년 겨울 오스트리아 명문 구단인 잘츠부르크와 계약을 맺었다. 지난 시즌엔 리퍼링에서만 18경기 출장에 11골 6도움을 기록했다.
황희찬이 팬들에게 처음으로 강한 인상을 심어 준 대회는 지난해 10월 열린 한국과 호주의 올림픽 대표팀 친선경기였다. 당시 대표팀에서 유일한 10대였던 황희찬은 2연전 중 첫 경기에서 전반 7분 만에 한국이 선제골을 도우며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는 경기 내내 폭발적인 스피드와 날카로운 돌파로 상대 수비진을 괴롭혔다. 체구가 좋은 호주 수비수들과의 몸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한국 축구계는 차세대 스트라이커의 등장에 흥분했다.
황희찬은 지난 1월 카타르에서 열린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도 빛을 발했다. 당시 그는 골이 없이 도움만 2개 올렸다. 카타르와의 4강전(3대 1 승)에서 한국의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행이 확정되자 홀연히 소속팀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황희찬은 비난 대신 찬사를 받았다. 골 없이도 상대를 무너뜨린 킬러 자질을 보여 줬기 때문이었다. 당시 카타르전에서 그는 10분만 뛰고도 환상적인 경기력을 펼쳐 보였다. 저돌적인 드리블로 카타르의 왼쪽 측면을 유린했다. 경기 종료 직전엔 문창진의 쐐기골을 돕기도 했다.
AFC U-23 챔피언십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황희찬은 올림픽대표팀의 핵심 공격수로 자리를 잡았다. 독일과의 조별리그 2차전에선 선제골을 터뜨리며 골 맛도 봤다. 리우올림픽에서 신태용호의 스트라이커 자리는 항상 그의 몫이었다. 늘 믿을 만한 스트라이커를 찾고 있는 울리 슈틸리케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의 레이더망에 황희찬이 걸린 것은 필연이었다.
황희찬은 이제 약관이다. 하지만 나이가 문제 될 것은 없다. 황선홍 FC 서울 감독도 20세이던 1988년에 발탁돼 카타르 아시안컵 한·일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터뜨렸다. 박주영 역시 20세에 국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우즈베키스탄과의 2006 독일월드컵 최종예선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렸다.
황희찬은 9월 1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중국전에 선발로 출격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소속팀의 경기에 출전하느라 2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첫 소집훈련에 참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손흥민, 지동원, 구자철 등 많은 공격 옵션이 있다”며 황희찬 대신 2선 공격수들 중 한 명을 원톱으로 올릴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황희찬은 30일 파주 NFC(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서 열리는 대표팀 둘째 날 훈련에 합류했다. 기존 선수들과 손발을 맞춰 볼 시간이 이틀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황희찬이 중국전에 나선다 하더라도 후반 조커가 유력하다.
이날 훈련에 앞서 황희찬은 “훈련을 잘해서 경기에 투입되면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열심히 뛰어서 팀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다. 상대 수비수들을 끌고 다니면서 형들에게 공간이 나오도록 많이 움직이겠다”고 말했다. 이어 연령별 대표팀에서 중국을 상대한 경험을 떠올리며 “매우 거칠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우리가 할 것을 잘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황희찬으로선 중국전에 선발로 나서지 못한다 하더라도 시리아전에서 자신의 끼와 재능을 맘껏 뽐내면 된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스무살 막내야, ‘찬’가 부르자
입력 2016-08-31 0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