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보러 얼마나 멀리 가시게요?

입력 2016-09-07 21:19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에 호수처럼 펼쳐진 내수면 너머로 성산·오조 지질트레일의 성산일출봉이 우뚝 솟아 있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전남 화순군 괴바위 고인돌의 굄돌.
경기도 구리시 건원릉.
전북 익산시 왕궁리유적.
폭염이 물러나고 선선한 초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여행하기 좋은 계절 전국 곳곳의 세계유산을 찾아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한국관광공사는 ‘세계유산 다시 즐기기’라는 테마로 세계로부터 인정받은 자랑스러운 유산 6곳을 ‘9월의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했다. 전북 익산의 백제역사유적지구, 전남 화순의 고인돌유적, 경기도 구리의 동구릉·수원의 화성 등이다.

백제인이 꿈꾸던 미래, 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전북 익산시 금마면)=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 등은 문화적으로 융성한 백제 후기를 대표하는 유산이다. 공주와 부여에 가려졌던 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는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함께 등재됐다. 미륵사지는 가람 배치가 독특한 백제 최대 사찰 터이고,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은 백제 무왕 때 건립된 것으로 알려진 국내 최대의 석탑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현재 복원 작업 중이며, 복원 과정을 참관할 수 있다. 왕궁리 유적은 백제의 궁궐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직사각형 왕궁 터에서 정원 유적, 금을 가공하던 공방 터, 수도를 상징하는 기와 등이 발굴됐다.

고인돌에서 채석장까지 거석문화의 진수, 화순고인돌유적(전남 화순군 춘양면 지동길)=화순은 강화, 고창과 함께 지난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1995년 발견돼 가장 늦게 모습을 드러냈지만, 산기슭에 분포해서 보전 상태가 양호하다.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를 한길로 잇는 보검재 5㎞ 구간에 있어 탐방 동선도 편리하다. 무엇보다 고인돌과 채석장을 같이 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고인돌이 도로 옆에 밀집하고, 산기슭에는 응회암 채석장이 있다. 그 가운데 감태바위 채석장은 여러 가지 고인돌과 채석한 덮개돌, 바위에 나무쐐기를 박은 자국 등을 가까이 볼 수 있다. 효산리에서 진입하는 게 수월하나, 대신리 고인돌발굴지보호각을 보고 출발하면 고인돌 문화를 이해하기 좋다. 운주사, 적벽투어 등과 연계한 화순 돌 문화 여행도 가능하다.

조선 왕릉의 박물관을 만나다, 동구릉(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조선 왕릉은 조선왕조 500여 년에 이르는 역사를 품고 있다.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훼손·인멸되지 않고 온전하게 보존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고귀한 문화유산이다. 동구릉(사적 193호)은 조선 왕릉 가운데 가장 많은 9기가 모여 있어 ‘조선 왕릉 박물관’이라 할 정도로 다양한 왕릉과 역사가 전해진다. 주변에 숲이 울창하고, 자연 생태도 잘 보존돼 산책이나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구리코스모스축제가 열리는 구리한강시민공원도 가까워 초가을 가족 나들이 장소로 제격이다.

정조의 효심이 낳은 성곽의 꽃, 화성(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건축된 수원 화성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우리나라 건축 역사에서 독보적인 건축물로 꼽히며, ‘성곽의 꽃’이라고 불릴 정도로 빼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2016년은 ‘수원 화성 방문의 해’로 볼거리와 체험 프로그램이 더욱 다양하다. 성곽을 따라 이어진 길이 운치 있고, 옛 성벽과 도심의 빌딩이 어우러진 경치도 볼 만하다. 정조가 화성 행차 중에 머문 화성행궁에서는 장용영 무사들이 날마다(월요일 제외) 무예24기 공연을 선보이며, 일요일에는 장용영 수위 의식이 진행된다.

화산이 빚어낸 겹겹이 쌓인 시간 속을 걷다(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일출로)=2007년 한라산과 성산일출봉, 거문오름용암동굴계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으며 2010년에는 산방산, 용머리해안 등 12개 명소가 유네스코 선정 세계지질공원 타이틀을 달았다. 성산·오조 지질트레일은 세계자연유산이자 세계지질공원인 성산일출봉과 성산리·오조리를 두루 지나는 도보 여행 코스다. 내수면을 따라 7㎞ 남짓 걷는 동안 식산봉과 족지물, 투물러스 지형, 아픈 역사가 새겨진 터진목과 동굴 진지 등을 만난다.

거문오름은 만장굴을 비롯해 여러 용암동굴을 만든 모체다. 해설사와 함께 신비한 화산지형, 동굴 진지, 곶자왈이 펼쳐진 분화구 안을 탐방한 뒤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에서 제주도의 탄생 과정과 지질구조, 한라산의 생태 등을 배워보자. 만장굴은 세계적 규모를 자랑하는 용암동굴로 용암 유선, 용암 선반과 더불어 높이 7.6m에 이르는 용암 석주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문무왕 만나러 가는 ‘왕의 길’, 신문왕 호국행차길(경북 경주시 황용동)=신문왕이 아버지가 잠든 대왕암(문무대왕릉)을 찾아간 ‘신문왕 호국행차길’ 걷기는 신라를 새롭게 만나는 방법이다. 그 길에는 통일신라 격동의 역사와 만파식적 신화가 담겨 있다. 궁궐을 출발한 신문왕의 행차는 토함산과 함월산 사이 수렛재를 넘어 천년 고찰 기림사에 이른다. 수렛재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오르는 유순한 길로, 울창한 활엽수림이 장관이다. 중간에 만나는 용연폭포는 용의 전설을 품고 시원하게 흘러내린다.

걷기는 기림사에서 끝나지만, 경주 감은사지를 거쳐 이견대와 대왕암까지 둘러보자. 죽은 문무왕이 용이 돼 드나들던 감은사지와 이견대에서 바라보는 대왕암이 감동적이다.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