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바른 소리했다 금융 당국에 찍힐라…” 현안에 굳게 입닫은 경제단체·학계

입력 2016-08-31 00:01
“금융위원회 눈치를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음에 합시다.”

한 경제관련 단체 대표는 지난주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이렇게 말했다. 업계의 민감한 현안을 두고 현장 의견을 듣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단체의 입장을 적극 피력하기보다 침묵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 사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금융 현안에 관한 질문에 “익명으로 해도 누구인지 정부가 다 추적한다는 소리도 있다”며 아예 인용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시장과 학계가 금융 당국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고 있다. 금융기업이나 현업 단체들은 물론이고 연구기관과 대학 교수마저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앞서 인터뷰를 요청받은 단체 대표는 “공개적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회원들의 이해를 대변해야 하는 처지에서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기 힘들다”며 “기자들도 다 알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홍채인식 기술을 도입한 삼성전자는 공인인증서가 필요 없다는 가장 큰 장점을 제대로 홍보하지 못해 속앓이를 하고 있다. 규제기관의 이권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한 연구기관 박사는 대우조선해양의 정부 지원이 적절했는지 묻는 질문에 답하면서도 “나야 어차피 정부에 찍혔으니 상관없지만 동료들에게까지 괜히 피해주고 싶지 않다”며 “그냥 경제 전문가나 학계 관계자 정도로만 표시해 달라”고 당부했다.

금융산업이 급변하고 국민가계 대책이 시급한 상황인데도 학계나 업계에서 활발한 토론이 사라졌다. 이유는 정부의 눈 밖에 나면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할지 불안하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정부의 프로젝트를 따는 데 불이익을 받을지 몰라, 업계에서도 정부에 밉보일까 입을 다문다.

대우조선해양의 자금 지원을 결정한 지난해 10월 서별관회의를 두고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일방적인 결정이 아니었다며 “당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간 입장 차이가 있어서 서별관회의 이전에 합의가 안 된 부분을 금융 당국으로서 조정을 한 것”이라고 했다. 업계와 학계의 분위기를 보면 과연 청와대 내에서 열린 비공식회의에서 얼마나 활발한 논의가 이뤄졌을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현장 중심의 금융개혁이 금융 당국의 구호지만 현장의 목소리가 사라지면서 관치금융은 더 심해졌다. 금융위는 이달 초 금융업계 현업 단체인 생명보험협회에 과장 출신의 낙하산을 전무로 앉혔다. 한국증권금융에도 29일 금융권 경력이 전무한 조인근 전 청와대 연설기록 비서관이 감사로 들어가 억대 연봉을 꿰찼다. 금융감독원 출신의 또 다른 낙하산이 예정된 손보협은 여론의 눈치를 보며 국회 국정감사 이후로 인사를 미루고 있다.

학계에서도 토론이 사라졌다. 한 국립대 교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입장이 다른 사람끼리는 아예 얘기도 안하고, 가까운 사람끼리도 우리끼리 하소연하는 꼴밖에 안 되니 굳이 현안을 거론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