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는 김일성만 죽으면 통일이 될 줄 알았다. 우리가 받은 반공 교육은 김일성이라는 천하의 못된 괴물이 북한 전체를 억압하는 것이라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김일성이 죽어 환호를 지른 것은 잠깐, 김정일이 대를 이어 독재를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참으로 흉악한 집안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정권관리(?)를 잘하면 아들에게 정권을 고스란히 물려주어도 반대하는 목소리 없이 정권이 교체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조금씩 민주주의 체제를 탄탄하게 만들어가고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같은 언어와 역사를 가진 북한이 그 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은 김일성 일가의 탁월한 권력 장악력과 용인술 때문이라고 짐작을 했다.
국민들에게 기아와 가난만 남겨주었던 김정일이 갑자기 죽었을 때, 이제야말로 북한의 독재정권이 내부로부터 곧 무너질 것이라고 쉽게 생각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이때부터는 내부 붕괴론도 그럴 듯하게 돌아다녔다. 하지만 3대에 걸쳐 북한은 아직 붕괴되지 않았다. 물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북한에 대한 정보를 모르는 상태에서 미래를 예측할 자격이나 입장은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북한이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한 심리학자로서 나름대로 분석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북한은 미군정을 거치면서 서구 민주주의를 경험한 남한과 달리 한 번도 민주주의 체제에서 살았던 적이 없다. 조선의 유교 봉건주의와 일제의 군국주의, 그리고 김일성 일가의 독재 말고는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김일성 일가는 제정일체의 종교 지도자로 북한사람들에게 각인되었다는 사실이다. 국내외 학자들이 이미 지적한 바 있지만, 북한은 실패한 국가가 아니라 나름대로 성공한 사이비 종교 집단이다. 우리가 무슬림들에게 마호메트의 사생활에 대해 언급하거나 모욕하는 말을 하면 큰일 나는 것처럼 바깥세상을 알지 못하는 북한 동포들에게 김일성 일가를 모욕하는 언사를 하면 큰 낭패를 본다. 셋째, 6·25전쟁 경험을 아직까지 매일 반복해서 주입당하고 있는 북한사람들의 심리에는 여전히 미군과 남한에 대한 피해의식과 불안, 공포가 있다는 사실이다. 6·25가 북침이 아니라 남침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는 북한의 대부분 주민들은 핵무기라도 있어야 폭격을 당하지 않고 생명을 부지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슬픈 사실이다. 넷째, 김일성 일가 주변에서 수십 년에 걸쳐 공고하게 권력과 부를 유지하고 있는 엘리트 집단이 탁월하게 유지시키고 있는 그들만의 리그와 시스템의 존재다. 좋은 머리와 역량들이 김정은 일가를 중심으로 기존의 권력을 보수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집중되고 있는 반면 의식화된 적도 없고, 최소한의 재산도 일구지 못한 채 근근이 살아가는 대부분의 북한주민들 역량은 보잘것없다.
이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면서 그들이 칭하는 이른바 ‘최고 존엄’인 김정은의 성격이 어떻고 하는 식으로 감정을 건드려 싸움을 거는 것이 과연 우리 쪽 정치 지도자가 택할 유일한 방법인지는 의문이 든다.
북한의 권력층과 언론인들은 쉽게 말해 집단 과대망상에 싸인 컬트 집단과 비슷하다. 정신과 의사가 망상 환자를 대할 때 “당신은 환자이니 망상을 버려요!”라고 말하면 십중팔구는 격한 반응을 보이면서 치료가 실패한다. 일차적으로 망상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고, 그들의 망가진 자아가 재건되도록 도와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치료의 원칙이다. 물론 의술처럼 한가하고 평화로운 것이 아닌 게 정치이지만 최소한의 정치적 레토릭(수사·修辭)이라도 제대로 구사하면서 심리적, 군사적 전략을 탄탄하게 만들어갈 필요는 있지 않을까 싶다.
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 원장
[청사초롱-이나미] 북한 정권을 다루는 방법
입력 2016-08-30 1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