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 버릴 거야!”
남편은 ‘돈을 달라’며 부인에게 흉기를 들이댔다. 집안은 쑥대밭이 됐다. 전남에 사는 이미숙(가명·53)씨가 지난 2월 겪은 일이다. 이씨와 남편은 결혼 18년째다. 남편이 이씨를 폭행·협박하다 경찰서를 드나든 게 지난 1년 동안만 두 번이다. 2014년 11월에는 이씨를 다치게 해 법원에서 가정보호사건 처분도 받았다.
이씨는 차라리 운이 좋은 편이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부부, 부모와 자식 간의 폭력은 끔찍한 결말로 치닫는 일이 잦다. 지난 27일 전남 곡성에서 심모(40)씨가 아내를 흉기로 살해하고 자해를 한 채 경찰에 붙잡혔다. 같은 날 서울 동작구에서 A씨(36)가 어머니(63)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숨겨져 있던 끔찍한 폭력들이 세상에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가정폭력을 쉬쉬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고, 신고와 검거를 강화하는 제도적 장치들도 강화됐기 때문이다. 경찰청은 지난해 가정폭력 검거 건수가 4만822건이었다고 29일 밝혔다. 4만건을 넘기는 처음이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운영하는 여성긴급전화(1366)의 가정폭력 상담은 2011년 7만1070건에서 지난해 15만9081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가정폭력은 ‘뫼비우스의 띠’다. 끝없이 반복된다는 치명적 특징을 보인다. 경찰에 수시로 잡혀가도 ‘나쁜 습관’을 고치지 못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혈연관계로 얽혀 있기 때문에 ‘무 자르듯’ 폭력의 고리를 끊을 수도 없다. 정부는 가정폭력 재범률이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재범률 하락은 ‘검거 인원’이 급격히 늘면서 나타난 신기루일 뿐이다.
‘피해자 보호’보다는 ‘가정 보호’에 무게를 싣는 법도 가정폭력의 악순환을 부추긴다. 가정폭력사범 검거가 3배 가까이 늘어나는 동안 구속률은 1%대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검찰에 송치된 뒤 형사사건으로 기소되는 비율은 지난해 8.45%에 불과했다. 가정보호사건으로 법원에 넘겨져도 마찬가지다. 매년 가해자의 30% 이상이 아무 처분도 받지 않고 가정으로 돌아간다. 나머지 30∼40%는 사회봉사, 상담 등 가벼운 처분을 받는다.
가해자들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돌아온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가정 밖으로 달아난다. 그러나 ‘완전한 탈출’은 먼 나라 얘기다. 가정폭력의 주된 피해자인 아내, 아이, 노부모 등은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구조적 문제에 발목 잡혀 있다. 가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강하거나, 경제적 자립이 힘들어 어쩔 수 없이 가해자에게 다시 기대는 식이다. 지난해 가정폭력 긴급피난처에 입소했던 피해자 48%가 집으로 돌아갔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는 악순환도 나타난다. 변현주 여성인권진흥원 가정폭력방지본부장은 “피해자가 성인이 된 뒤 자신보다 약한 아내나 부모, 자녀에게 투사해 다시 폭력을 저지르는 식으로 대물림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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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안의 괴물] “지옥”… 가정폭력 年4만건 넘었다
입력 2016-08-30 04:00 수정 2016-08-31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