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정’ 김지운이 본 송강호, 송강호가 본 김지운

입력 2016-08-30 20:45 수정 2016-08-31 13:46
‘밀정’으로 송강호와 8년 만에 다시 만난 김지운 감독. “차갑게 시작했다가 송강호 덕분에 뜨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영희 기자
김지운 감독 신작 ‘밀정’에서 조선인 일본 경찰 이정출을 연기한 송강호는 “김 감독과 워낙 궁합이 잘 맞는다”며 흡족해했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추석 연휴를 겨냥해 9월 7일 개봉되는 영화 ‘밀정’은 김지운(52) 감독과 배우 송강호(49)가 네 번째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김 감독의 데뷔작 ‘조용한 가족’(1998)으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반칙왕’(2000)에 이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에서 의기투합했다. 20년 가까이 연출과 연기 파트너로 관계를 쌓아온 두 사람을 뭉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29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에서 두 사람을 각각 만나 서로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 감독 김지운이 본 송강호

“왜 송강호냐고? 모든 감독이 차례 기다리는 배우가 송강호”


김지운 감독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했다. “송강호의 뭐가 그리 좋으냐”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즉각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어떤 감독이든 한번쯤 해보고 싶은 배우잖아요. 제 차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어요. ‘밀정’은 조선인 일본 경찰 이정출 역으로 송강호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지만 캐스팅이 안 될 수도 있었거든요. 왜 송강호냐고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죠. 연기를 잘하잖아요.”

김 감독은 “송강호의 캐스팅 주기가 8년”이라고 했다. “송강호가 첫 주인공을 맡은 ‘반칙왕’에 이어 8년 만에 ‘놈놈놈’에 출연했고, 다시 8년 만에 ‘밀정’ 주연으로 캐스팅됐어요. ‘놈놈놈’ 때는 이창동 감독의 ‘밀양’ 때문에 촬영이 연기돼 결과적으로 8년 만에 호흡을 맞추었고, 이번에는 제가 ‘인랑’이라는 작품을 준비하다 ‘밀정’을 앞당겨 작업하게 됐는데 딱 8년 만이네요.”

김 감독은 송강호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꼈을까. “한결같이 정상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한계를 깨어 나가는 배우죠. 인물의 성격 창출 면에서 독보적인 감성을 지녔고요. ‘저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밀정’은 제 스타일을 내려놓고 처음으로 영화 속 인물을 좇아간 작품인데 송강호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죠.”

‘밀정’에는 이병헌이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을 이끄는 정채산 역으로 나온다. 이병헌과 김 감독 역시 ‘달콤한 인생’(2005) ‘놈놈놈’ ‘악마를 보았다’(2010)에 이어 네 번째 만남이다. “뭔가 불안한 시대상황에서 어떤 변곡점과 강한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어요. 짧고 굵게, 카리스마도 있고 연기력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배우 이병헌을 캐스팅한 거죠.”

일제강점기 의열단과 일본 경찰의 비밀 첩보작전을 그린 ‘밀정’은 누가 밀정인지 알 수 없는 불우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내면에 초점을 맞췄다. “원래는 차가운 이미지의 ‘콜드 누아르’ 스파이 영화를 찍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당시 시대로 들어가 보니 울컥하며 뜨거운 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액션도 있고 뜨거운 영화가 됐어요. 그 중심에는 송강호 공유 엄태구 등 배우들이 있어요.”

다시 송강호 얘기를 꺼낸 김 감독은 “8년 후에도 또 만나기를 바란다”고 했다. 줄곧 칭찬만 하기에 “단점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단점요? 너무 무서운 사람이에요. 송강호와 공유가 함께 술 마시는 장면이 있는데 별로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잘랐어요. 그런데 삭제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넣고 보니 그럴 듯하더군요. 연기의 신에 편집까지∼ 아! 무서운 사람”이라며 웃었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사진 서영희 기자

■ 배우 송강호가 본 김지운

“작품을 격조 있게 찍었더라 김지운 감독에게 한 수 배워”


믿고 보는 배우 송강호가 ‘밀정’을 택한 이유는 색다른 느낌 때문이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대부분의 작품이 붉은 빛의 강렬한 이미지인 반면 ‘밀정’은 회색빛의 회화적인 콘셉트라는 게 매력적이었다.

“그 또한 김지운 감독과 함께 한다는 게 가장 컸죠.” 결정적으로 마음을 굳힌 건 역시 김 감독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송강호는 “김 감독이 이번에는 격조 있게 영화를 만들었다”며 “결과물이 멋스럽게 나온 것 같아 좋더라”고 웃었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함께해온 김 감독과는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다. 촬영 현장이 편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아요. 연기라는 게 대화를 통해 해결되는 건 아니거든요. 배우의 감성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감독은 그걸 지켜보고 컨트롤만 하는 거죠. 그런 점에서 김 감독과 궁합이 잘 맞아요.”

극 중 송강호는 조선인 신분으로 친일을 택해 경무국 경부 자리까지 오른 일본 경찰 이정출 역을 맡았다. 의열단 리더 김우진(공유)을 만나면서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인물이다.

내적 변화를 해석하는 과정에서는 감독과 이견이 있었다. 송강호는 “처음에는 이정출이 변심하는 동기가 약하지 않나 싶었다”며 “김 감독은 그런 장치를 두는 게 촌스럽다고 생각하더라. 그러면 우리 영화가 그리는 세계 자체가 작아 보인다는 거였다. 동의했다. 그때는 내가 한 수 배웠다”고 말했다.

“의열단장 정채산(이병헌)과 바닷가에서 깊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눈빛으로 설명이 된 것 같아요. 관객들에게 그게 보이지 않는다면 저와 이병헌씨 연기가 부족한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하하.”

수많은 후배들의 롤모델로 꼽히는 송강호다. 이번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공유·엄태구도 그를 향한 존경심을 여러 차례 표했다. “그거 좋지만은 않아요(웃음). 부담감이 더 많이 드는 것 같아요. 물론 긍정적인 효과는 있죠. 작품 할 때마다 나태해지지 않으려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송강호는 이를 “건강한 부담감”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런 마음을 갖고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게 후배들뿐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좋은 모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할리우드 영화 ‘라스트 스탠드’(2013)를 찍고 돌아온 김 감독에게 달라진 점이 있더냐고 물으니 그는 “(작업이) 빨라졌더라”며 웃어보였다. 이내 표정을 굳히고는 한국영화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 전망했다. “우리의 장점 위에 할리우드 방식이 접목되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점점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