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려고 벽쪽으로 이동했다 살았다”… 14시간의 기적

입력 2016-08-29 18:42
구조대원들이 사고 발생 14시간여 만인 29일 새벽 붕괴된 경남 진주의 상가 건물 속에서 고모씨를 극적으로 구조해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고씨는 "살아서 기쁘지만 숨진 분이 계셔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매몰된 인부 3명 가운데 고씨는 구조됐으나 다른 인부 2명은 숨진 채 발견됐다. 뉴시스

“살아서 기쁘지만 숨진 분이 계셔 마음이 정말 무겁습니다.”

경남 진주시 건물 붕괴 사고 14시간여 만인 29일 0시40분. 강모(55)씨가 이미 숨진 채로 발견됐지만 구조대원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아직 두 사람이 살아 있을 것이라는 신념으로 구조작업을 이어갔다.

건물 3층 바닥에 뚫은 공간에 인명구조견을 투입하는 순간 구조견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짖기 시작했다. 소방관은 생존자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누구 없느냐?”고 외치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고OO입니다”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연 현장은 술렁였다. 안전 여부를 묻자 그는 “허리가 좀 아프지만 괜찮다”고 말했다.

구조대원들은 생존자를 안심시키려고 대화를 이어갔다. 추가 붕괴 우려 속에 잔해를 일일이 제거하는 과정을 거치는 사투 끝에 29일 오전 1시쯤 무사히 고모(45)씨를 기적적으로 구조하는 데 성공했다.

잔해 속을 빠져나온 고씨는 “작업 도중 잠시 담배를 피우려고 건물 내부의 벽 쪽으로 다가서는 순간 ‘쾅’하는 소리와 함께 건물이 붕괴됐다. 벽 쪽에 붙어 있어 붕괴한 천장과 외벽 사이에 공간이 생기면서 살아있을 수 있었다”며 회고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벗어나 들것에 실려 바깥세상으로 나온 그는 다행히 큰 부상이 없고 현재 인근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며 건강검진을 받고 있다. 병원 측은 고씨 건강을 이유로 취재진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고씨는 가족과 지인들을 통해 “천운으로 생각한다”는 말을 전했다.

고씨는 지난 28일 오전 작업반장 강씨와 리모델링 작업을 위해 인부 5명과 함께 현장에 도착, 사고가 발생한 이날 오전 11시4분쯤까지 벽체 해체와 벽돌 철거 작업을 했다.

고씨가 구조되기 1시간여 전 함께 작업에 나섰던 강씨는 숨진 채 발견됐고 마지막으로 이날 새벽 3시20분쯤 인부 김모(43)씨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구조대원들의 필사적인 노력 끝에 사고 발생 16시간 만에 구조·수색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 구조대원은 “사망자가 발생해 너무 안타깝다. 그래도 생존자를 극적으로 구조해 보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사고를 수사 중인 진주경찰서는 44년 된 노후 건물의 철근 등 골조가 삭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구조변경을 시도하다 발생한 사고라고 밝혔다.

진주=이영재 기자 yj311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