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자리 부족 심각한데 수십년 고질 여전한 노동시장

입력 2016-08-29 18:56
이미 일자리 부족과 청년실업률 급등에 직면한 우리 노동시장에 제4차 산업혁명으로 통칭되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몰려오고 있다. 노동의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가운데 인적자본의 질을 유지·발전시키는 동시에 신성장 분야의 일자리를 늘려 고용을 창출하는 것은 모든 정부가 직면한 도전이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29일 9개 국책연구기관장과 함께 개최한 ‘노동시장 전략회의’에서는 우리 노동시장의 복합 위기 징후가 여실히 드러났다. 뿌리 깊은 불공정 하청 관행과 대·중소기업 간 격차로 청년실업이 악화하는 가운데 인적자본 경쟁력은 하락 위기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회의에 제출한 ‘하도급 공정거래와 대·중기업 격차 완화’ 보고서는 충격적이다. 이에 따르면 원청 대기업의 100만원 임금변화 시 하도급 기업의 임금변화는 6700원에 불과했다. 원청 대기업 A가 다른 대기업 B사보다 임금을 100만원 더 준다 해도 A사 하도급 업체의 임금은 B사 하도급 업체보다 겨우 6700원 많다는 뜻이다. 원청 대기업이 아무리 이익이 나도 이를 하도급 업체와 공유하지 않는 것이다. 구두발주, 대금 미지급 등 하도급법 위반 업체 비율도 49%에 달했다. 이처럼 대기업이 이익을 다 독점하고 불공정 하도급이 만연하다보니 중소기업들이 청년층을 고용할 여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인적자원 개발의 중요성은 한층 높아졌지만 현실은 낙관적이지 않다. 201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성인역량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모든 연령층에서 인적자본 저하율이 높다. 한국 청년층의 인적자본 저하율이 OECD 국가 중 세 번째로 높았고 특히 50세 이후 세대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저하율을 보였다. 근로자 능력이 정규 교육을 받은 이후에는 평생교육 기회 미비 등으로 빠르게 떨어진다는 의미다. 저출산 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 현실에서 이러한 인적자본의 저하는 국가 경쟁력에 심각한 위협 요인으로 다가올 것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도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와 높은 제조업 기반 등 강점을 가진 반면 획일적 교육과 노동시장 제도·관행 등 준비 정도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우리 정부는 수십년 된 대기업의 중소기업 수탈 구조와 불공정 관행을 시정하면서 신성장 분야의 창의적 인적자원을 교육·공급해야 하는 이중과제를 안고 있다. 정부가 맡아야 할 1순위 업무는 원·하청 임금 격차와 불공정 관행 시정일 것이다. 고용친화적 기업생태계 형성에 행정력을 집중하면서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민간 부문의 인적자원 개발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늘려야 한다.